제14화 DEA 요원이 되다
재호가 태국으로 탈출한 날로부터 얼마 후 주한 미해군 사령부 진해분견대의 헬리 패드는 수송용 헬기 UH-1 이로쿼이 헬기의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로 요란했다. 용산 미해군 사령부에서 사령관 스티븐 준장이 도착한다고 해서 진해분견대 지휘관들 모두 긴장한 상태로 그를 마중하기 위해서 도열해 있었다.
콜먼 중령이 거수 경례로 스티븐 준장을 맞이했고, 프랭크도 콜먼 중령의 뒤에 배석 지휘관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콜먼 중령이 스티븐 준장과 그와 동행한 DEA 요원 한 명을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해서 스티븐 준장에게 상석을 내어주며 물었다.
"사령관님!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여기 프랭크라는 작전장교가 있지?"
"네,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를 찾으시는 겁니까?"
"일단 그를 불러주게."
콜먼 중령은 자신의 부관 스미스 소령에게 지시해서 프랭크를 데려오게 했다.
"헤이, 프랭크! 콜먼 중령님이 자네를 찾으시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는 겁니까?"
"정확하게는 스티븐 사령관님이 자네를 찾는다고 봐야겠지."
프랭크는 며칠 전의 일로 그런 게 아닌지 걱정됐지만, 일단 부딪혀 보자는 심산으로 담담히 스미스 소령을 따라서 스티븐 사령관을 만나러 갔다. 스티븐 사령관을 보자 프랭크는 거수 경례를 했고, 스티븐이 답례를 하고는 입을 뗐다.
"자 이리로 와서 앉게."
"네, 사령관님!"
"자네 1970년대에 미얀마와 라오스 접경지역의 몽족을 도와 라오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CIA 작전에 협력 요원으로 참석한 바 있지?"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에도 파견되어 CIA를 도운 경력이 있고 말이지?"
"네, 맞습니다."
"이것 좀 보게나."
스티븐 준장은 프랭크에게 DEA 최고책임자에게서 받은 협조공문과 CIA 국장의 추천서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프랭크는 그 협조공문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사령관님! Navy SEAL 출신의 작전장교인 저를 지금 DEA 요원이 되라고 예편을 종용하시는 겁니까?"
"그게 말이야. 상황이 좀 복잡해. 좀 들어보게. 이쪽은 DEA 동아시아 지부장 로버트일세."
"반갑습니다. 저희 DEA는 AIR AMERICA를 통한 군수 물자 수송 과정에서, 골든 트라이앵글의 접경지역 통행허가 과정에서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물자수송 과정에서 반정부세력들의 아편이 군수 물자 속에 몰래 수송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 지역 작전 적임자를 찾고 있던 중 프랭크 대위의 비정상적인 재산증식에 대해서도 알게되었구요. 하지만 아직까지 밝혀진 공식적인 증거자료는 없으니, 프랭크 대위가 저를 이어서 저희 DEA 동아시아 지부 작전을 총괄해준다면 그 [아직]이 [영원히]로 바뀔 것입니다."
"자 어떻게 히겠나? 자네가 이 길로 소령으로 진급한 후 예편한다면, DEA 동아시아 지부장이 되는 걸세. 자네도 알다시피 DEA가 좀 집요해야지. 난 그 [아직]이 [영원히]가 되었으면 하네. 자네같이 뛰어난 인재가 오명으로 추락하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프랭크 대위가 미얀마 샨족 출신의 사이롱에게 미얀마 샨주로 데려가 달라고 한 사람을 부탁한 적이 있죠?"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이롱은 이제 저희 DEA 방콕 지부에서 언더커버 요원들에게 샨족의 언어와 생존훈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친구 이름이 연재호 맞지요?"
"거기까지는 미쳐 생각을 못 했는데, DEA의 정보력이 대단하군요."
"내가 말했잖나? DEA가 엄청 집요하다고 말이야. 자네에 대한 모든 것을 이미 다 파악하고 내게 부탁하러 온 거였네."
"그 친구를 그냥 미얀마의 샨주에 떨궈 놓고 알아서 생존하라고 하는 것보다 샨족의 언어를 가르치고 생존 훈련을 시킨 후 데려다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프랭크 대위 아니 이제 프랭크 소령이 DEA 방콕 동아시아 지부를 맡게되면 그동안 눈에 띄지 않고 생존하는 법에 치중한 훈련을 프랭크 소령의 스타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 뭐 그렇긴 하겠지요."
프랭크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어차피 재호를 위해서 군복을 벗고 미얀마로 갈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결정하고서 그 제안을 수락했다.
"DEA 방콕 동아시아 지부로 가겠습니다."
"누가 Navy SEAL 아니랄까봐 화끈하군요!"
"이곳 생활은 빨리 정리하고 일주일 내로 DEA 방콕에 있는 동아시아 지부로 가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한편, 재호를 태운 로이드 트리에스티노호는 부산 감천항을 출발한 지 8일째 되는 날 자정 무렵에 태국만에 진입한 후 짜오프라야강 하구에 도달하자 도선사 프라묵이 승선해서는 강수로를 따라서 배를 방콕의 클롱 토에이 부두로 이끌었다. 기름막이 군데군데 형성되어 있는 짜오프라야강은 물의 수위가 점점 만조에 가까워지자 더욱 탁한 갈색빛을 띠었다.
새벽 5시 30분 즈음 클롱 토에이 항에 도착한 재호는 열대의 습기, 디젤 냄새와 강하수 냄새가 혼합된 냄새를 코로 들이켰다. 상당히 이질적인 냄새와 클롱 토에이항의 콘크리트 부두를 비추고 있는 황색 나트륨등으로 눈앞에 펼쳐진 전경에 재호는 복합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언어도 모르고, 연고도 없는, 게다가 전혀 새로운 문화에서 생존해야 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고, 마음은 착잡했다.
상당히 거칠고 혼잡한 부두의 분위기에 짓눌려 있을 때, 누군가가 재호에게 다가와서 영어로 말을 걸었다.
"연재호 씨 맞죠?"
"네, 그런데 누구시죠?"
"보는 눈이 많아요. 저를 따라오세요."
재호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따라오라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 사이, Sai Long은 재호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데려갔다.
"저는 프랭크가 말해서 당신을 마중 나온 사람이에요."
"예, 프랭크 형을 아세요?"
"쉿! 우리들 사이에 어떤 말도 새어나가서는 안 돼요. 전 당신을 아주 위험한 사람에게 데려갈 건데, 그전에 생존에 관한 훈련을 받아야 해요."
"위험한 사람요? 그리고 생존 훈련은 또 뭐죠?"
"궁금한 게 많을 텐데, 일단 우리 지부로 가서 이야기해요. 당신은 지금부터 미얀마의 샨주로 보내지기 전까지 사람들 눈에 절대 노출되면 안 되는 인물로 살아갈 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재호는 그렇게 사이롱을 따라서 랜드 크루저 지프차에 탑승한 뒤 DEA 동아시아 방콕 지부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언더커버들의 훈련 베이스가 있는 칸차나부리로 향했다. 한편 프랭크도 진해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최소한의 짐만을 꾸린 채 방콕으로 날아갔다. 이들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아는지 모르는지 혼탁한 짜오프라야강은 도도히 흘러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