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소년

제16화 칸차나부리

by 김하록

Chokchai Clothing Wholesale 주변 가게들에서는 종이에 가격을 적어서 서로 보여주고 지우고 다시 쓰면서 한참 협상 중인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수라차이 아저씨!"

"안녕, 사이롱! 오늘은 무슨 일로 왔어?"

"네, 옷 좀 사려고요."

"누가 입을 옷이야?"

"이 친구가 입을 옷이에요. 다양한 색깔 디자인 별로 질기면서도 시원한 긴바지, 짧은 바지, 잠옷으로 쓸만한 코끼리 무늬 바지 등 잘 섞어서 30벌, 티셔츠, 면티도 각각 30벌 주세요."

"평소보다 꽤 많이 사는군. 친한 친구야?"

"예, 뭐 당분간 저랑 같이 지낼 친구예요."

"그래, 다해서 7600 바트 정도 되는데, 어디 보자."


수라차이 아저씨가 암산을 하면서 최종 얼마로 할까 계산을 하자 사이롱은 수라차이를 아저씨를 도와서 4600 바트를 세어서 건네주었다.


"여기 4600 바트예요."

"참 신기하단 말이야. 언제나 내가 말하려는 가격을 어쩜 그리 잘 알고 미리 알아서 주는 지 볼 때마다 신통방통이야."

"저 팬티랑 양말도 좀 사야 해서 솜폰 아줌마 가게로 건너 갈게요."

"그래, 잘 가! 자주 들러."

"예, 아저씨!"


사이롱은 짧은 인사말을 나누고 근처에 있는 솜폰 아줌마 가게로 가서 팬티 30장과 양말 30켤레를 샀다. 왜 이렇게 많이 사는 지 궁금했던 재호가 사이롱에게 물어봤다.


"원래 이렇게 많이 사주시는 거예요?"

"아니. 원래는 많아야 세네 벌 정도 사."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많이 사주시는 거예요""

"응, 하루에 한 벌씩 돌아가며 입으라고."

"빨래해서 입으면 되는데, 이렇게까지 많이 사주시지 않아도 돼요."

"나도 왜 그런지 궁금하지만, 프랭크 대위님이 그렇게 하라고 특별히 당부하셨어. 너를 많이 아끼는 모양이야."

"네. 형 동생으로 지내는 사이예요."

"그렇군! 어쩐지 신신당부를 하더라니."

"왜 그게 이상해요?"

"이상하지. 프랭크 대위님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그만의 거리가 있거든."


프랭크는 성격도 좋고 다정다감해서 여러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지만, 그는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는 걸 허용하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래 같이 지낸 사람이나 매우 가까운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그만의 거리를 잘 유지했다.


"그게 뭔데요?"

"뭐 그런 게 있어. 자 이제 본격적으로 생존훈련을 받을 칸차나부리로 가볼까?"

"생존 훈련, 칸차나부리."


긴장된 표정으로 재호가 사이롱이 한 말 중 일부를 받아서 되뇌이자 사이롱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긴장 풀어. 안 잡아 먹으니까. 네가 미얀마의 샨주에서 더 잘 살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돼."

"네, 알겠습니다."


딱 드르르르 탁 타타타타타타 랜드크루저 지프차의 거칠고 두꺼운 시동음과 함께 지면을 박차고 칸차나부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배가 부르고 어느 정도 안심이 되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수석 바닥에는 코닥 Tri-X 400과 후지칼러 HR 400 필름 통 여러 개가 굴러다녔고, 대시보드 위에 군데 군데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5만분의 1 축척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대시보드 아래에는 가끔씩 알아들을 수 없는 노이즈 음과 태국어들이 들려오는 줄 달린 마이크가 눈에 들어왔고, 뒷좌석에는 400mm 망원렌즈가 장착된 니콘 F3 카메라가 던져져 있었다.


사이롱은 4번 국도 Phet Kasaem Road를 타고 차오프라야 평원을 가로질러 나콤 빠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복잡한 시장통을 벗어나자 길가에는 태국 국왕의 초상화와 태국 국기가 곳곳에 걸려 있었고, 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수로 위에는 작은 목조 가옥들이 떠 있었다. 수로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스쳐 지나가자 어느새 바나나 나무와 야자수 나무들이 무성한 농장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콤 빠톰에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논이 펼쳐져 있었다. 어느 정도 달리자 멀리 지평선 위로 분홍빛이 도는 거대한 종 모양의 프라 빠톰 제디 불탑이 위엄있게 재호의 시야에 들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불탑으로 웅장하기 이를데 없었다. 나콤 빠톰에 들어서서 조금 더 달린 이후에 사이롱은 사방이 뚫린 도로변의 한 양철 지붕 식당 근처에 차를 세웠다. 천장에는 대형 선풍기 한 대가 삐걱거리며 돌아가고 있었고, 투박한 나무 탁자로 만든 사각형 테이블 위에는 피쉬 소스, 설탕, 고추가루가 담긴 양념통 세트가 놓여 있었다.


차에서 내린 사이롱은 천장의 선풍기 소음이 특히 시끄럽게 들리는 주방 근처의 구석 자리로 가서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에 자리 잡고 앉자 재호는 그 맞은 편에 앉았다. 사이롱이 테이블 위에 태국 국산 담배 Krong Thip을 세로로 세워두고 그 옆에 빨간색 라이터를 올려두자, 식당 직원 한 명이 메뉴판을 들고 와서 무엇을 먹을 것인지 물어봤다.


"손님! 무슨 요리를 드시겠습니까?"

"여기 족발 덮밥 카오 카 무 2개랑 밀크티 차옌 두 잔 주세요."

"네, 손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더 시키실 것은 없나요?"

"오늘 콰이강은 어때요? 물고기가 잘 잡히던가요?"

"오늘은 콰이강의 물살이 세서 낚시꾼들이 잡어 몇 마리만 잡고 돌아왔습니다."


재호는 이들이 무슨 말을 주고 받는지 신경 쓰지 않는 척 했고, 족발 덮밥은 재호의 입맛에도 잘 맞아서 맛있게 먹어치웠다. 그리고 아침과는 달리 차옌은 조금 여유롭게 마셨다. 사이롱은 점심 값으로 20바트를 지불하고 나서 식당 직원과 몇 마디 더 주고 받았다. 식당 직원이 검은 봉지로 싸맨 물건을 건네주자 사이롱은 이번엔 200바트를 지불하고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지프차로 향했다.


사이롱은 거친 시동음과 함께 지면을 박차고 나가서 323번 국도를 타고 칸차나부리 시내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했다. 지평선만 보이던 평평한 땅에 서서히 기복이 생겨났고, 도로 좌우로 사람 키보다 높이 자란 사탕수수 밭과 옥수수 밭이 끝없이 이어졌다. 4차선이었던 도로가 점차 좁아지며 고도 차이가 느껴질 정도가 되었고, 도로변에는 붉은 색 흙이 드러난 절개지 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랜드크루저 지프차의 타이어가 튕겨내는 돌가루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자 차량 뒤에서 짙은 주황색 또는 붉은 갈색의 흙먼지가 로켓에서 불꽃이 분사하듯 V자 형태로 강하게 뿜어져 나와서 수직으로 솟구치더니 차 뒤를 따라오듯 도넛 모양으로 둥글에 말려 올라갔다. 사이롱과 재호가 탄 지프차가 멀어지자 마치 두꺼운 커텐을 공중에 길게 펼쳐 놓은 듯 뒤에 따라오는 차량들의 시야를 차단했다.


사이롱은 선글라스를 닦아서 고쳐 썼고, 지도 위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털어냈다. 거대한 불탑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거칠은 석회암 봉우리들이 툭툭 튀어나왔고,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칸차나부리 시내 초입에 이르자 제9 보병사단의 군부대 담벼락이 길게 이어졌고, 위장색의 GMC 트럭들과 군용 지프차가 빈번하게 양차로를 교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칸차나부리 시내는 1층은 상점이고 2층부터는 주거공간인 콘크리트 샵하우스들이 도로변을 채우면서 원색의 태국어 간판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고, 먼지가 쌓인 차양막들이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거리고 곳곳에는 붉은색 기와를 얹은 전통양식의 목조 가옥들이 섞여 있어서 상당히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사이롱이 모는 랜드 크루저 옆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삼륜차 툭툭과 짐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어지럽게 엉켜서 달리고 있었고, 길가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픽업트럭들이 일렬로 주차되어 있었다. 시내 중심가에 다다르자 대형 파라솔 아래에서 과일를 파는 상인들과 숯불에 닭고기를 굽는 연기가 도로를 뒤덮었다.


사이롱은 재호에게 칸차나부리의 냄새를 느껴보라는 듯이 창문을 내렸다. 그러자 매콤한 고추 굽는 냄새, 생선 젖갈 남쁠라 냄새, 그리고 낡은 엔진 소리에 실려오는 매연이 뒤섞여서 코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사이롱과 재호가 탄 랜드크루저를 힐끔거리기 시작하자, 사이롱은 다시 창문을 올리고서 칸차나부리의 시내 중심가를 지나서 콰이강의 다리를 향해 달리다가 콰이강의 다리로 꺽어 들어가기 대략 1.5km 전 대로 변에 위치한 주유소에서 정차했다. 주유소 바닥은 짙은 디젤 기름때로 얼룩져 있고, 때묻은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주유원 한 명이 재호 일행이 타고 있는 랜드크루저로 걸어와서 물었다.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가득 넣어줘."

"요즘 기름 값이 미쳤어요."

"알아. 여기 700 바트야. 이거면 충분할 거야. 남는 돈은 너 가져."

"감사합니다."


주유소 직원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랜드크루저의 대형 연료 탱크 뚜껑을 열고 주유총을 꽂아서 주유를 시작하자 태엽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기계식 숫자가 착착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사이롱은 재호와 함께 주유소 옆 작은 구멍가게에서 폴라리스 유리병 생수를 몇 박스 사서 뒷좌석에 던져놓았다. 사이롱은 타이어를 발로 차서 확인하고, 윈도 브러시로 앞 유리의 붉은 먼지를 닦아내고, 차량 뒷편의 유리로 가서 걸레로 먼지를 닦아냈다. 그런 다음 주유소에 달린 간이 정비소에서 공기압을 맞추고는 다시 시동을 걸고 32번 국도를 따라서 계속 북서쪽으로 들어갔다.


콰이강의 다리를 가로지르는 검은색 철교의 철판을 밟을 때마다 텅, 텅 하며 육중한 금속음이 강물 위로 울려퍼졌다.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가파른 절벽과 동굴 사원인 왓 탐 카오 뿐이 보였고, 도로는 점차 좁아지고 포장 상태도 나빠졌다.


칸차나부리 시내를 벗어나자 좌우로 사탕수수 밭이 사라지고 빽빽한 대나무 숲과 티크 나무들이 도로를 덮기 시작했다. 도로는 붉은 황토인 라테라이트 비포장길이 시작되었고, 붉은 먼지가 차 뒤로 거대한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앞에 가는 차량이 만들어낸 붉은 먼지 구름때문에 사이롱이 와이퍼를 작동시켜 유리창을 닦아내자, 워셔액 냄새가 차안으로 훅 들어왔다.


노면이 거칠어지자 사이롱은 주행 중 클러치를 밟고 H4 사륜 고속 레버를 아래로 당겼다. 그러자 육중한 기어 맞물리는 소리가 차체 바닥에서 울려퍼졌고, 엔진의 묵직한 포효소리가 정글의 정막을 깨웠다.


조금 더 들어가자 도로 한쪽은 깍아지른 석회암 절벽이었고, 다른 한쪽은 가드레일도 없이 콰이강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였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목재 운반용 트럭이 미친듯이 경적을 울려대자 사이롱은 아슬아슬하게 절벽 끝에 차를 붙이며 트럭과의 충돌을 피해갔다. 재호가 많이 긴장했는지 이마의 땀을 훔치자 사이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서웠어?"

"정말 너무 아슬아슬해서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몇 번 경험해보면 익숙해질 거야."

"이런 걸 몇번이나 경험해야 한다고요?"

"늘상 있는 일이니까. 하하하!"


사이욕 국립공원 입구를 지날 무렵 1월의 태양은 낮게 깔리며 석회암 산맥 사이로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이롱은 선글라스를 벗어서 대시보드위로 던져놓고는, 계속해서 차를 몰아서 탐 끄라새 절벽길을 지나서 이름 없는 임도로 꺽어서 1시간을 더 달려서 콰이강이 크게 굽이치며 평지가 살짝 나타난 왕포 마을 인근의 티크 숲에 있는 농장 하나로 들어가서 지프차의 엔진을 껐다. 강물 소리와 정글의 매미 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렸고, 엔진은 틱, 틱 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식어갔다.


"자 도착했어. 당분간 여기서 지내며 생존 훈련을 하게 될거야."

"생존 훈련은 주로 뭘 하는 건가요?"

"미얀마 샨주의 언어와 풍습, 그리고 눈에 띄지 않고 진짜 샨족처럼 생존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 배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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