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耳順), 세상과 화해하는 시간

by 지즐Zizzle

공자는 나이 예순에 이르러 '귀가 순해졌다'라고 했다.

젊은 날에는 나를 향한 쓴소리에 가시를 세우고, 나와 다른 의견에 화를 내기도 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 야속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순의 문턱에 서니 깨닫게 된다.

모든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매달리기보다 있는 그래도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큰 평온인지를 말이다.


이제는 내 삶을 방해하던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시간이다.

남들의 기준에 맞춘 성공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소소한 기쁨에 집중하기로 한다.

아침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사유할 수 있는 순간을 행복하게 받아들인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사한 하루가 한없이 고마운 하루로 스며든다.

이 사소하고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인생의 가장 큰 기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잘 왔다. 참으로 애썼다.

거울 속의 얼굴에는 내가 지나온 세월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눈가의 주름은 웃음의 흔적이다.

미간의 굴곡은 치열하게 고민하며 가정을 일구고 일터를 지켜온 아름다운 훈장이 아닐까?

예순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를 넘어선다.

부모로, 자식으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쉼 없이 달려온 성적표인 것이다.


예순까지 참 바쁘게 살았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발밑에 핀 꽃 한 송이를 여유롭게 보지 못하고 지나쳐온 순간들이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해줄 때가 되었다.

"여기까지 잘 왔다. 참으로 장하다." 이 한마디가 그 어떤 위로보다 절실한 순간이 왔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포옹이 필요한 것이다.


예순은 마침표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이라는 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쉼표이자 새로운 문단의 시작을 알리는 울림이다.

과거에는 환갑이라 하면 노년의 시작이라 여겼다.

지금의 예순은 두 번째 서른과 같이 설렘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체력은 예전만 못할지 몰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와 여유는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온화하다.


그동안 해야 하는 일들 때문에 미뤄두었던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꺼내 본다.

거창한 목록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냥 죽기 전에 내가 꼭 하고 싶었던 것들이면 족하다.

배우고 싶은 악기를 떠올려 본다.

드럼, 기타, 첼로, 색소폰...

또 다른 배우고 싶은 분야를 찾아본다.

볼륨댄스, 벨리댄스, 꽃꽂이, 다도, 요가, 명상....

가보고 싶었던 낯선 골목길과 여행의 여정들

오롯이 혼자 즐기는 고요한 시간

이제 나는 누구의 무엇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 자격이 충분히 있다.


앞으로의 시간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을 곁에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진심을 나눌 수 있는 몇몇의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욕심을 채우기보다 비워내고 덜어냄으로써 얻는 가벼움을 즐길 것이다.

잘 나이 든다는 것은 멋진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넉넉한 마음씨로 주변을 따뜻하게 물들이는 것이다.


예순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배움의 가치를 추구한다.

예순의 나무는 단단한 옹이를 품은 나이테로 영글어져 있다.

그 속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수액이 흐른다.

비바람에 잎사귀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뿌리는 더 깊게 땅을 파고든다.

예순이라는 나무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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