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먹고 깊이 느낀다

by 지즐Zizzle

예전의 나는 많이 먹는 사람이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접시는 늘 가득해야 풍족함으로 다가왔다.

비워진 그릇은 어딘가 부족한 하루같이 느껴졌다.

젊은 날에는 속도가 중요했다.

아침 출근하기 전에 먹는 아침도 허겁지겁 채워 넣는 수준이었다.

직장에서의 점심은 더 빨랐다.

빨리 먹고, 빨리 일하고,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야만 했다.

직장에서의 점심은 여유가 부족했다.

씹는 시간이 짧았다.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음식에 대한 맛을 음미할 시간도 없었다.

부랴부랴 먹었고 배가 차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쩌면 밥을 먹지 않고 마신다는 표현이 제격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는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많이 먹으면 몸이 신호를 보냈다.

서두르면 마음이 먼저 지쳤다.

그래서 나는 줄이기 시작했다.

양을 줄였다.

속도를 줄였다.

필요 없는 것들을 하나씩 덜어냈다.

조금 천천히 먹을 필요가 있다.

음식물을 씹는 과정에서 분비되는 타액은 항산화제 역할을 한다.

음식을 많이 씹을수록 잘 분비된다.

침은 소화를 돕는다.

위장에 관련된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음식물을 씹는 행위 자체가 뇌에 적절한 자극을 준다.

기억력이 좋아지고 노인성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천천히 먹으면 과식을 막을 수도 있다.

포만감을 느끼는 호르몬이 분비되려면 식사 시작 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호르몬이 분비되기 전에 밥을 빨리 먹으면 적정량보다 많이 먹기 쉽다.

빨리 먹으면 음식 맛을 음미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많이 먹으면 포복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신기하게도 양을 줄이니까 음식의 맛도 더 잘 느껴졌다.

밥 한 숟갈의 촉촉함

된장의 깊은 국물 맛

김치가 지나온 숙성된 시간의 결까지 생각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스쳐 지나가던 맛들을 또렷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

적게 먹으며 오래 씹으니까 더 오래 그 맛과 함께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천천히 먹으니 더 깊은 맛이 와닿고 혀끝에 스며드는 순간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점점 적게 먹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점점 소화력도 떨어지니까 말이다.

하지만 적게 먹으니 더 깊은 미식가가 되어 간다.

맛을 깊이 알고 즐기는 사람, 즉 구르메(Gourmet)가 되어 가는 것이다.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싶다.

요리의 기술을 넘어 감각과 철학으로 승화시키면 어떨까?

단순한 eater가 아니라 예술품을 음미하고 감상하는 수준으로 격상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황홀한 순간으로 떠오른다.

많이 가질 때는 몰랐던 감사가 적당히 덜어낸 자리에서 고요히 떠오른다.

비워진 공간은 결핍이 아니라 여백으로 충만하다.

식탁 위뿐만이 아니다.

말도 줄어들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은 삼킨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감정은 잠시 접어 둔다.

그 대신 한 마디라도 더 오래 생각한다.

한 번의 눈 맞춤을 더 깊이 받아들인다.

젊은 날에는 많음이 힘이고 능력이라고 여겼다.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많이 해야만 했다.

많이 가져야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려놓음을 안다.

많음은 때로는 감각을 무디게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적게 먹으면 혀가 깨어 있다.

적게 말하면 마음이 깨어 있다.

적게 가지면 삶이 또렷해진다.

이 나이가 되니 알겠다.

몸은 예전 같지 않다.

감각은 오히려 예민해졌다.

나는 이제 배를 채우기 위해 먹지 않는다.

순간을 느끼기 위해 먹는다.

한 숟갈을 천천히 씹는다.

이 맛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한다.

햇빛, 흙, 물, 손길, 그 모든 시간이 내 입안에서 하나로 버무려서 오묘한 감각으로 되살아 난다.

적다는 것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덜어내고 남은 것의 진수이며 진액인 것이다.

나는 점점 적게 먹고 깊게 느낀다.

그리고 그만큼 덜 불안해졌다.

많이 채워야 안심이 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지금은 조금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

양보다는 질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나이 듦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속도를 잃는 대신 깊이를 얻는 일 말이다.

양을 줄이는 대신 의미를 얻는 소중한 선물인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삶은 많이 삼키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예쁜 그릇에 조금 담는다.

소담스럽고 정성스러운 양을 삼키며 오래도록 그 맛을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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