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결일까?

by 지즐Zizzle

요즈음 나의 피부가 점점 건조해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앰풀을 듬뿍 덜어 얼굴 전체와 목에 넓게 펴 바른다. 피부결을 따라 정성껏 다듬어 낸다.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주름결이 드러나 보이고 있다. 하루아침에 주름이 펴질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 긴 세월동안 매일 한결같이 가꾸고 부지런히 정성껏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더 나빠지기 전에 지금의 결을 잘 유지해야 한다. 더 나아가 조금씩 결이 좋아지도록 꾸준히 나의 피부결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을까?

나의 마음결도 마찬가지다. 심술보가 가득차고 질투와 조급함, 아집으로 점철된 마음결로는 남은 삶에 도움이 될 리 없다. 앰플을 잔뜩 흡수하듯이 사랑과 감사와 긍정과 혼연일체가 되는 마음결을 가지고 싶다. 어떻게 하면 나의 마음결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결은 어떤 흐름이 지나갔는지에 대한 흔적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흔적뿐만 아니라 결의 촉감과 강도, 그리고 살아온 방식이 함께 남아있는 것이다.

나무에도 미세한 선들이 있다. 그 선들은 시간의 기록이다. 계절마다 굵어진 나이테가 모여 무늬가 되고, 무늬가 다시 결이 되는 것이다. 나무는 자라면서, 버티면서, 흔들리면서 자기 결을 만든다. 천도, 종이도, 머리카락도 마찬가지다. 실이 겹겹이 얽혀 방향을 잡는 순간 결이 잡히고, 물결처럼 흘러가는 순간 결은 드러나 보인다.

사람의 결은 어떨까? 사람의 결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긴 세월동안의 흔적위에 저마다의 결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곧게 뻗은 결을 가지고, 누구는 물결처럼 부드러운 결을 가진다. 누군가는 옹이가 박혀 더디게 이어지는 결을 갖는다. 그것이 좋고 나쁜 건 아니다. 결은 방식이고, 삶의 속도이며, 각자가 가진 리듬이다. 그래서 "저 사람 참 결이 곱다."라는 말은 단지 예의바르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반대로 "결이 안 맞는다."라는 말은 서로의 리듬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목공 장인들은 작업할 때 항상 말한다. "결을 거스르지 마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결을 거스르는 순간 재료는 쉽게 찢어지고 상처가 난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속도나 방식으로 오래 버티려 하면 쉽게 무너진다. 남과 비교하며 억지로 보폭을 맞출 때 유난히 지치고 상처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에 맞게 살 때는 덜 흔들리고, 아픔이 덜하다.

오늘 피부결을 따라 앰플로 부드럽게 마사지를 하면서 느낀 감정이다.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며 떠오른 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 결이 어떤지 궁금해졌다. 촘촘한 결인가? 성글지만 멀리 이어지는 결인가? 혹은 때때로 방향을 잃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결인가? 젊었을 때는 모든 것이 평평하고 매끈해 보였다. 하지만 시련과 기쁨이 뒤섞이면서 결은 점점 깊어져가며 흔들리며 굴곡지며 변화를 거듭해 온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주름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시간이라 부르고, 나는 그저 내가 살아온 방향과 성장과 고뇌의 증거라고 부르고 쉽다. 나의 삶의 궤적이며 흔적인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사람의 결은 단단해지고, 어떤 사람의 결은 부드러워진다. 단단함은 견딘 인내와 아픔과 성장의 흔적이요, 부드러움은 내려놓은 흔적이 아닐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시간이 흐른다는 뜻이 아니라. 결이 정리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젊을 땐 마구 새기던 마음의 나이테도, 어느 순간부터는 조용한 성찰과 함께 쌓이고 있다. 마음이 조용해진다는 건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는 뜻이다.

나는 결이 고운 사람이 좋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말이 곱게 닿는 사람, 서두르지 않아도 자리를 지키는 사람, 불필요한 힘을 쓰지 않아도 관계를 상하게 하지 않는 사람. 그런 마음의 결은 조용하지만 오래도록 나의 마음에 고여 온다. 반대로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결이 얕은 사람도 있다. 조금만 힘이 가해져도 금이 가고, 시간이 지나면 갈라지는 결 말이다. 요란한 것보다 오래 버티는 것이 더 아름다운 법이 아닐까 한다.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결이 있다. 거친 결도, 매끈한 결도, 구불구불한 결도, 중요한 것은 서로의 결을 억지로 깎아 맞추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결을 알아보고 맞닿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결을 맞춘다는 건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결의 속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결의 방향을 존중하며 함께 한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결을 아는 것이 아닐까? 자기 결을 알면 선택이 쉬워지고, 관계가 편안해지고,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않게 된다. 혹시 지금 나의 결이 흔들린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나쁜 게 아니다. 나무에 옹이가 생기는 것도 대개 흔들린 자리에서 생긴다. 흔들림은 결을 깊게 만들고, 깊은 결은 오래가는 것이다.

나무가 결대로 자라듯, 사람도 결대로 살아가면서 의외로 오래 버티며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을 견지할 수 있다. 남이 보기엔 느려 보여도 내 결에 맞은 속도라면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남들이 다 달린다고 해서 따라 달리다 보면 쉽게 쪼개지고 갈라지고 만다.

이런저런 다양한 결들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나만의 결을 마음속으로 찾고 정립해서 더듬어 본다. 어떤 방향으로 이어져 있는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떤 결로 어떻게 흘러가고 싶은지, 조용한 사유의 시간을 갖고 있다. 나의 결을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소중한 순간이다. 오늘 나는 찬찬히, 장시간 숙고하고 있다. 그렇게 나의 여러 결들을 여미고 저미며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나만의 결을 차곡차곡 챙기며 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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