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통한 낯선 여행지의 향기
책장 사이에서 낯선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순간 머릿속이 갸웃해졌다.
위스키? 언어?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이지?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잘 손이 가지 않았다.
술을 테마로 한 여행 에세이라니, 내게는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멋진 사진이 담긴 표지는 끌렸지만,
‘술’이라는 단어 하나가 괜히 마음을 망설이게 했다.
20년전의 광화문 서점에서의 일이다.
20년을 훌쩍 뛰어 넘어 책장을 펼치자, 하루키 특유의 문장이 나를 이끈다.
담백한듯 하면서 묘하게 깊고, 낯선 주제임에도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처럼
풀어내주는 힘.
특히 위스키를 삶에 빗댄 대목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무언가를 버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짧지만 강렬한 문장.
위스키가 오랜 숙성과 기다림 끝에 제 맛을 내듯,
삶도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읽다 보니 금세 깨달았다. 이 책은 단순한 술 여행기가 아니구나.
위스키 한 잔에 담긴 향과 깊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와 말의 무게까지 돌아보게 하는 글이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구절은 이거였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술잔을 내밀고 그것을 받아 조용히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말이라는 게 참 그렇다. 누군가에겐 날카로운 독이 되고,
누군가에겐 따뜻한 향처럼 퍼진다.
나도 모르게 내뱉는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에,
책장을 덮는 순간 마음이 서늘해진다
하루키 작가는 이 책에서 “위스키”라는 매개를 빌려 묻는다.
우리는 어떤 언어로 관계를 맺고,
어떤 시간 속에서 내 삶을 무르익히고 있는가.
처음엔 낯설게 다가왔던 테마 여행기.
하지만 하루키의 문장 덕분에, 낯선 주제도 곧 내 이야기가 되었다.
책을 덮고 난 지금, 위스키 한 잔이 괜히 생각나는 이유는
아마도 그 향 속에 담긴 삶의 철학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