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고도를 기다릴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by 마이진e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당황스러웠었던 기억이 있다.


스토리가 거의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사건도 없고, 결말도 없다.

두 사람은 계속 같은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끝까지 고도는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이상한 희곡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내 안에서는 뭔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오늘도 내일도 같은 곳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떠나자고 말하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그만두자고 말하면서도 다시 기다린다.

그 모습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우리는 자주 어떤 ‘고도’를 기다리며 산다.

때가 오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 조금만 더 버티면 달라질 거라는 기대.

하지만 그 ‘때’라는 것이 생각보다 잘 오지 않는다.


늘 무언가 하나쯤 부족하고, 상황은 완벽해질 기미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다린다.

지금의 불안보다 막연한 미래가 조금 더 덜 아프다는 이유로.

『고도를 기다리며』가 잔인한 이유는 희망을 빼앗아서가 아니다.

희망에 매달린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정면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다. 그들처럼 무작정 기다리는 시간으로 버텨냈다.

책 속 인물들은 완전히 절망하지도, 완전히 희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애매한 상태로 하루 하루를 버텨낸다.

그리고 그 애매함이 우리의 삶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베케트는 묻는 것 같다.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삶의 태도는 어쩌면 기다림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기다림을 핑계로 오늘을 미루고 있지 않는지,

아니면 기다리면서도 오늘을 잘살아내고 있는지.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물들은 기다림 속에서 웃고, 다투고, 말하고, 침묵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시간 안에서도 그들은 우리는 그저 존재하고 있다.

삶은 대부분 기다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완성되기 전의 시간, 확신이 오기 전의 시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무언가를 품고 사는 시간.

중요한 건 그 시간을 그저 흘려 보내고 있느냐, 아니면 숨 쉬며 붙잡고 나아가고 있느냐의 차이다.

고도가 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달라질수 있다.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기다림이 멈춤이 아니라 인생의 살아가는 한 방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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