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몽테뉴처럼 죽는 법

by 마이진e

100세 시대.

우리에게 죽음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웰 다잉(Well-dying)에 대한 질문은

조용히, 그러나 깊이 우리 곁에 머문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아툴 가완디가 묻던 질문처럼,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아름답게 떠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몽테뉴를 다시 바라볼 때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황혼의 마무리는

철학자 몽테뉴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생각에 잠기는

에릭 와이너의 시선을 따라가보자


어떻게 죽을 것인가? 질문 앞에

오래전, 한 철학자가 떠 올린다.

삶의 마무리를 위해

삶 전체를 들여다보았던 사람.


그는 말한다.

“죽음을 배우는 일은, 곧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에릭 와이너가 기차에 올라타 만난 철학자들 가운데,

몽테뉴는 유독 조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죽음은 삶의 일부다.”

이 문장을 천천히 읽고 또 읽어 본다.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그 말이,

왜 따뜻하게 들리는 걸까.


몽테뉴는 평생 자신의 생각을 관찰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서 시작해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다다른 사람.


그에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끝에서 맞이할

익숙한 존재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죽음을 외면한다.


죽지 않을 것처럼 살다가,

죽음을 맞닥뜨릴 때 비로소

삶을 돌아본다.


하지만 몽테뉴는 달랐다.

그는 매일 죽음을 상상했다.

그러고는 더 단단하게 살았다.


지금 이 순간,

조금 더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서.

죽음을 생각하면,

사소한 것들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남의 시선도, 미루어둔 계획도,

어쩌면 전부 사치일 수 있음을 안다.


몽테뉴는 말했다.

“철학이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에릭 와이너는 이 문장을 따라가며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만약 지금 당신이 죽는다면,

무엇을 후회할 것인가?’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몽테뉴의 탑과 생테밀리옹 사이를 오가며

또렷한 생각에 잠겨 본 저자


몽테뉴처럼 죽고 싶다.

내 삶이 나를 배반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속이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천천히, 진심을 다해 살아가고 싶다.


죽음이 온다고 해도,

이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도록.

아쉬움보다 고마움이 먼저 떠오르도록.


몽테뉴처럼 죽는다는 건

사실, 몽테뉴처럼 사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더욱 투명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오늘을 살아 낼수 있게 되어 간다.


삶이라는 긴 여행은 결국

어떻게 떠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


그 자리에 몽테뉴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서 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거울로 바라보았다.


죽음을 연습한다는 것은

곧 삶을 더 온전히 살아내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는 말없이 말한다.

삶이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사랑스러워야 한다고.


그는 마지막까지 당당했고,

마침표마저도 철학으로 남긴 사람. 그 이름 몽테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