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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와 나의 '좋고 나쁨' 은 다를 수 밖에 없다

by 마이진e


어린 시절부터 손자와 차별하는 할머니 밑에서, 그리고 종갓집이라는 가부장적인 환경 속에서 본의 아니게 투쟁적으로, 용감무쌍하게 살아오다 보니, 행복이란 내가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늘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가끔은 대단한 행복을 느꼈고, 아주 가끔은 불행을 경험했을 뿐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간은 그 중간 어디쯤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늘 "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는 나만의 기준 없이 일반적인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늘 마음 한편에 품고 있던 이 감정은 어쩌면 행복에 대한 막연한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행복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지만,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때때로 패배자의 감정으로 나를 찾아온다.

행복이라는 것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될것이다.

특히나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인간관계다.

나는 11년의 일을 노력의 결실이 무너져 가는 가운데 타인을 통해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경험 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느냐’가 아니라, 그 관계 속에서 어떤 감정을 더 자주 경험하느냐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관계속에는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바로 남의 삶을 쉽게 재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하찮게 보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준을 절대적이라고 믿고 남을 평가하는 사람을 보면 피곤함을 느낀다.

나는 살아오면서 수없이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사회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나는 그 기준에 맞춰 평가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 기준이 과연 절대적인 것인지는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것이 성공일까? 반대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모험을 감수하는 것은 실패일까?

정답은 없다. 정해진 것도 아니다. 내가 선택한 삶이 나에게 의미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만의 성공지점 이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비교와 평가에서 벗어나야만, 나만의 가치를 기준으로 행복의 기준이 내 안에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해가면서, 행복은 특정한 상태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좋고 나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뿐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만의 삶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만족을 찾는 것이다.

더 가볍고 자유롭게, 그리고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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