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억지로 시키는 건 자유가 아니야.
네가 좋다고 고개 끄덕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해.”
시대적 배경이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에서
살다 간 루소
그런 그가 우리한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다.
루소는 고민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사람은 태어날 땐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다."
그런데 사회가 그 자유를 빼앗는다고요.
그래서 그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자유와 평등을 지키면서도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사회계약론』 저술했다.
버라이어티 한 일상의 시간들이 정리되어 간다.
6개월이 넘었던 변화무쌍한 시간과 선거를
치르고 난 후에 읽게 된 사회계약론.
루소는 이 책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해 준다.
이 나라는 누구의 것일까?
어릴 땐 대통령인 줄 알았다.
국회의원일 수도 있고,
뉴스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일지도. 아닌가?
그보다 더 위에 있는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생각해 보니 잘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말만 조금 다르고, 표정만 조금 다르다.
루소라는 사람은,
이 질문을 아주 오래전부터 붙잡고 살았다.
사람은 원래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말이다.
누구 하나, 누구 위에 있는 건 아니라고.
누가 나보다 돈이 많다고 해서,
누가 나보다 키가 크다고 해서,
그게 곧 나라의 주인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근데 세상은 자꾸 불편하게 움직인다.
힘 있는 사람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조용한 사람은 자꾸 구석으로 밀려난다.
루소는 그게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하나의 약속을 만들자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해치지 않기로 해요.’
‘우리는 함께 살아가기로 해요.’
그 약속을 사회계약이라고 불렀다.
어렵지 않다.
다 같이 잘 살아보자, 그거다.
그런데 그냥 말로만 하면 소용이 없다.
누군가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그래서 정부가 생긴 거다.
무섭고 높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약속을 지켜주기 위한 울타리.
그러니까 정부는 ‘주인’이 아니다.
우리 대신 일해주는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 덕분에 존재하는 자리다.
이걸 국민 주권이라고 한다.
말은 좀 어렵지만 뜻은 간단하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루소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진짜 자유는, 내가 동의한 법을 따를 때 생긴다.”
억지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고개 끄덕인 길을 스스로 걷는 것.
우린 법을 만들 순 없어도,
그 법을 만드는 사람을 뽑을 수는 있다.
그게 선거다.
표 하나,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모이게 되면 커다란 힘이 된다.
광장에 집결했던 그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진짜 무서운 건, 그걸 모른 채 흘려버리는 거다.
그래서 주권이라는 말은
무겁고도 힘이 있는 말이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주인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게 사는 우리가
진짜 주인일지도 모른다.
루소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함께 지은 집에서, 누구도 쫓겨나면 안 돼.”
우린 그 집에 살고 있다.
각자의 작은 방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한 지붕 아래 같이 산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그 약속을 지켜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