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생활의 균형과 조직 효과성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변수
OECD가 매년 발표하는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워라밸 지수는 10점 만점에 4.1점으로 조사대상 40개국 중 37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워라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워라밸, 즉 일과 생활의 균형(Work Life Balance: WLB)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오랜 기간 회사와 일을 우선시하던 종업원들의 가치관이 개인의 생활을 중시하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있다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여가시간을 갖고 싶어 하며, 승진이나 상사와의 관계 문제를 제외하고 일과 생활의 불균형은 핵심인력이 이직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앞서 겪고 있는 서구의 경우, 미국은 1980년대 후반 워킹맘에 대한 지원책을 중심으로 일과 생활의 균형 노력을 시작하여 1990년대에는 일-가족 균형으로 이를 확대하였습니다. 그리고 2003년 미국 의회에서 일과 가족의 갈등을 줄이기 위한 국가적 시책으로 National Work and Family Month를 정하고 교육 캠페인(National Work-Life Initiative)을 시작했었습니다. 영국에서도 정부가 2000년 일과 생활의 균형 캠페인에 나선 이후 일과 생활의 균형 문제가 널리 논의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보면 종업원들이 직무 공유나 유연한 근무방식을 주장한 것에서 시작하였으나 기업의 입장에서도 그 편익을 인식함에 따라 종업원의 개인 생활 요구들과 업무 사이에 조화를 이루도록 종업원, 기업, 정부가 함께 노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도 노력을 하고 있으나 가족 및 개인 변수가 크게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기혼여성의 역할 갈등에 대한 연구들을 시작으로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의 관계, 직장-가정 갈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및 직장-가정 갈등이 삶 만족도와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들이 수행되었습니다. 초기의 연구들은 주로 일과 가족의 부조화 측면에 초점을 두었으나 점차 일과 가족의 양립, 일- 가족 균형감과 같은 조화 측면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특히 주 40시간 근무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되고 2011년부터 20인 미만의 사업장까지 확대 시행됨으로써 일과 생활의 균형에 대한 욕구는 더욱 다양화되고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일과 일 이외의 생활과 관련하여 시간적, 물질적인 측면에서 균형을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아실현과 자기 계발 등 그 질적인 측면에서도 욕구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교육 및 홍보를 비롯하여 ‘남녀고용평등법’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개정하는 등 증가하는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주제는, 특히 국내 연구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일과 가족과의 관계, 특히 자녀를 둔 기혼 여성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우리 사회의 가치관, 가족 유형, 그리고 이에 따른 생활방식이 빠르게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부부로 구성되는 2인 가족은 1975년에 2.1%에서 2020년도에는 23.8%로 증가하였고, 1인 가구는 1980년에 4.8%에서 2020년도에는 39.2%로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기혼여성뿐만 아니라 남자 역시 일과 생활의 갈등에 마주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일과 생활의 균형에 대한 다양한 욕구의 출현과 함께 가족구조와 생활방식의 변화 등 관련된 환경적 변화가 급속히 나타나고 있기에, 일과 생활의 균형의 효과를 연구하는 데 있어 개인과 환경의 주요한 변화 요소를 고려해야 하며, 직업여성에서 다양한 생애주기의 남녀 모두를 포함하는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일과 생활의 균형 개념 정리와 기업의 노력
이러한 연구는 실제 기업 조직에서 제도의 운영에서도 필요할 것입니다. 기업 차원에서도 종업원의 삶의 질 향상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일과 생활의 균형 프로그램은 상당수 도입하고 있지만 현재는 자녀가 있는 가족에 대한 지원이 주를 이루는 바, 다양해지는 개인의 욕구와 가족의 형태를 고려한다면, 일과 생활의 균형 제도를 개인의 생활 영역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란 삶을 구성하는 두 가지 큰 축인 일과 일 이외의 영역 즉, 가족, 여가, 자기 계발 및 교육, 커뮤니티 활동과 인간관계 등의 균형을 의미합니다. Marks와 MacDermid(1996)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서로 다른 삶에서의 역할들(종업원, 부모, 배우자, 시민, 자기 자신 등)에 대해 동일하게 관여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이를 역할 균형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역할 간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란 특정 영역에 편중되지 않고 동일하게 애정을 갖고 충실히 역할을 행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일과 생활의 균형이란 일과 일 이외의 영역(가족 영역, 놀이 및 여가생활, 개인의 자기 자신 영역)에 시간과 심리적․신체적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함으로써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삶의 만족을 이루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과 생활의 균형 제도가 확대되고 있으나 그 효과성은?
이처럼 정의부터 보다 다각적인 논의가 필요한 일과 생활의 균형 연구에 있어 또 다른 논점 중의 하나는 조직 차원에서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제도를 실행하면 실제 조직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 인가입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어떤 효과성을 갖는지에 대한 연구들은 대부분 긍정적 효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영국 노동기구의 조사 결과, 중간 관리자가 생각하는 일과 생활의 균형의 영향은 이직 방지 효과가 52%로 가장 많이 보고되었고, 미국에서 실시된 National Study of Employer에 의하면 일과 생활의 균형이 사용자와 종업원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종업원으로 하여금 보다 업무에 몰입할 수 있게 하고, 직무만족 및 근무 의향을 높인다고 하였습니다. 보육 프로그램을 통해 일과 가정 균형을 지원할 경우 회사의 생산성이 제도 실시 이전보다 높아졌고, 자녀가 있거나 출산 계획이 있는 여성에게 탄력근무제를 시행하면 직무성과가 증가하였습니다. 국내에서도 일과 생활의 균형이 직업만족도를 높임으로써 조직몰입은 높이고 직무스트레스는 낮추며, 종업원의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막고 업무에 몰입하게 하여 기업 유효성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 제안되고 있습니다.
반면 일에 대한 몰입으로 발생하는 일과 가정의 갈등이 오히려 업무에 더 집중하게 할 수도 있으므로 가족친화경영이 반드시 순기능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을 제시하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한편, 미국 컨설팅회사인 Work-Life Balance Mastery & Motivation Mastermind(2008)가 일과 생활의 균형제도에 대한 종업원 개인들의 만족도를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종업원의 96%가 회사에서 제공하는 제도가 효과가 없거나 이용하기 어렵다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중앙인사위원회(2007)가 조사한 일과 생활의 균형제도에 대한 만족도 결과를 보면 모든 개별 지원제도의 만족도가 보통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일 지원 제도와 개인 성장지원 제도, 여가지원 제도에 대한 만족도가 가족지원제도와 건강지원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듯 일과 생활의 균형을 높이려는 제도의 만족도와 효과성이 일관적이지 않은 현상은 제도의 내용 차이나 현실적인 실행 수준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제도가 시행되는 환경이나 수혜 대상의 속성에 따른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일과 생활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업무구조, 문화적 요소, 일과 생활의 균형 제도, 개인적 속성 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근무시간, 기업규모, 복지제도 등이 일과 생활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며 직종보다는 근무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일과 생활의 균형 수준이 낮아집니다. 흔히 종업원들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문화가 일과 생활의 균형과 업무수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일과 생활의 균형제도를 실제로 시행하며 수혜 대상자들이 제도를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업무 특성이나 조직문화와 제도의 효과를 관련지은 연구가 일부 존재하지만, 일과 생활의 균형 수준이 조직 효과성을 제고하는 데 있어서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에 대한 이해는 매우 제한된 수준입니다.
구성원의 개인차에 따른 제도의 효과성 차이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특히 제도는 수혜대상의 특성과 필요에 따라 그 효과성이 달라질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연구가 아직까지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과 생활의 균형 제도는 일, 가족, 친구, 취미, 자기 자신과 같은 개인 삶의 5개 주요 분야에 있어서의 목표들과 잘 조합이 되어야 하고 개인의 속성에 따라 개별적인 접근이 되어야 한다(Mobley, 2008)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일과 생활의 균형 제도에 대한 연구나 제도의 효과성 평정에서는 개인의 속성을 고려한 접근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성격유형이 일과 가정의 균형에 중요한 선행 변인임을 밝히는 연구 결과(Wayne, Musisca & Fleeson, 2004) 등이 일부 보고되었으나 이 결과도 일과 가정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선행 변인을 연구한 것이며 일과 생활의 균형 수준과 조직 효과성의 관계에서 개인 속성에 따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밝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일과 생활의 균형 정도가 조직 효과성을 미치는 영향이 성별, 결혼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지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확인조차 부족한 상황입니다. 더욱이 심리적 측면에서 개인차 따라 어떤 영향을 받는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일과 생활의 균형 제도가 그 제도를 이용할 개인들의 속성에 따라 제도의 효과성이 달라질 수 있는 바, 가장 주요한 개인차 요인을 변별해내고 연구하는 노력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