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상대방의 차이-개인차: 성격 이해하기- 글 19
심리치료의 대상으로서 개인이 아니라 가족에 중점을 두는 것이 가족치료입니다. 여기서 가족 관계에 관한 다른 관점을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시스템 이론이라는 것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시스템 이론에서는 인간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시스템의 일부로서 다루어집니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른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으면 그것을 받아들여(입력),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요소에 영향을 미칩니다(출력). 가족시스템은 가족 개개인으로 구성되지만 일단 시스템이 성립되면 요소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이 개개인의 존재방식을 규정하게 됩니다.
즉, 가족으로서 관계성이 각 개인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예를 들어 자녀의 문제행동은 본인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인 가족 구성원으로부터의 입력을 기초로 한 출력으로서 다루어지고, 가족의 불안정한 관계성이 발달과정에 있어서 아주 불안정하고 민감한 자녀에게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가족치료에서는 문제를 가진 가족을 IP(Identified Patient), 즉 ‘환자로 보이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병리는 개인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하는 시스템이 가져온 것이라고 보고 가족 전체를 지원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족 구성요소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하나의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가족을 보면 원인 A에서 결과 B가 일어나고, 별도의 원인 C에서 결과 D가 발생된다는 일방향적 인과관계(직선적 인과율)로는 현상을 파악할 수 없게 됩니다. 예를 들면 ‘부부간의 불화가 자녀의 문제행동 원인이다’고 하는 것은 직선적 인과율이지만 자녀의 조그만 문제에 대처하고자 부모가 말을 주고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부부의 잠재적인 불화가 표면화되고, 그것을 본 자녀의 스트레스가 문제행동으로 연결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또 자녀의 문제행동이라는 공통의 과제가 부부관계를 겨우 연결시켜주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 그것을 느낀 자녀는 싸움을 해도 좋으니까 부모의 부부관계를 지속시키고 싶어 문제행동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객관적인 단 하나의 현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가족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에 의해 구성되어 말로 나타난 현상인 것입니다. 성격에 대해서 이런 관점으로 보면 그 발달의 이치에 대하여 몇 가지 가능성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가족 심리학에 있어서 특히 이점에 초점을 맞추어 발전한 것이 내러티브 이론(narrative theory)입니다.
내러티브 이론에서는 자신과 주변 또는 경험이나 사건에 대한 의미와 현실은 타자와의,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나 언어행위 속에서 만들어지고 경험된다고 보고 있습니다(Anderson, 1997). 성격도 우리들이 세상을 경험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여 다른 사람과의 관계하는 속에서 생성된 이야기(narrative)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러티브라는 것은 복수의 사건을 시간 축에 따라 펼쳐 논 것입니다. 내러티브 치료에서 치료자의 역할은 그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변화에 눈을 돌리게 하여 고정된 이야기의 패턴을 유동화시키고 새로운 이야기(역사)를 만들어 내도록 내담자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내러티브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언급해 온 것과 같은 다양한 영향요인이 있습니다만 가족의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 속에서 어떻게 평가되고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예를 들면 ‘맷집이 강한 아이’로서 실패도 하나의 경험으로 존중되고 있는가. 아니면 ‘상처받기 쉬운 아이’로 시행착오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내러티브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건과 사건을 연결한 시계열로 연속된 이야기이지만 ‘맷집이 강한 아이’와 같은 양육환경인 경우, ‘어릴 때부터 실패 투성이었지만 가족은 그래도 자신의 선택을 지켜봐 주었다. 그런 환경에 있었던 자기 자신은 어려움에 도전하여 실패해도 곧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는 내러티브를 가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이런 내러티브를 가짐으로써 전직 등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내러티브는 여러 영향요인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친구 등 가족 이외의 타자와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격언과 같이 사회의 가치관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존재이고, 같은 사건에 마주치더라도 그것을 어떤 것으로 경험하고 다른 어떤 사건과 연결시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가 에는 개인차가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차에 주목하는 것이 내러티브 이론에서 성격을 보는 접근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몇 가지의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해도 그 몇 가지 가능성 가운데 어느 한 이야기가 선택되어 그 상황을 지배하고 확고한 전제가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배적 이야기는 dominant story라고 부릅니다(White & Epston, 1990).
예를 들면 ‘3세까지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지 않으면 자녀에게 나쁜 영향이 있다’라는 이야기는 나아가 ‘세 살 아이 신화’로 사회에 존재하는 dominant story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발달 초기의 어머니의 취업은 자녀의 발달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는 대안적 이야기(alternative story)가 여러 연구에서 제시되어 요즘은 이것이 오히려 dominant story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생이나 인간관계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dominant story를 자신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alternative story로 바꿔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치료방법으로서 재 저작 대화(re-authoring conversation)입니다만 치료의 장면이 아니라도 이런 식의 대응이 있을 수 있으므로 내러티브를 바꾸어 쓰는 것을 성격의 주체적인 형성과정으로 다룰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 치료(Narrative Therapy)는 가족치료의 여러 분야들 중에서 1990년대 호주와 뉴질랜드의 Michael White와 David Epston의 두 사람이 공동으로 기초를 닦아서 지금은 호주와 뉴질랜드와 미국, 그리고 캐나다를 비롯하여 유럽지역(영국, 덴마크)과 홍콩, 싱가포르 지역에서 가족치료 및 심리치료 분야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가족치료이자 심리치료. 이야기 치료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기초하여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 및 인류학, 정치학 그리고 사회과학의 여러 이론들로부터 태어난 새로운 심리치료 분야. 철저하게 치료자와 내담자의 co-work를 기초로 하여 상담 치료 기법을 통해서 내담자의 창조적인 치료 과정을 진행.]
[글 16], [글 17], [글 18], [글 19]를 통해서 '가족 관계에서의 성격' 챕터로 가정이라는 곳과 가족이라는 관계에 초점을 두고, 성격의 발달을 중심으로 정리해 왔습니다. 가정에서의 경험만으로 개인차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Bronfenbrenner(1979)는 발달 환경에 대하여 미시 체계(microsystem), 중간 체계(mesosystem), 외체계(exosystem), 거시 체계(macrosystem)라는 4개의 겹 구조 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미시 체계는 사람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장면이나 관계이고 아이를 주체로 생각할 때 가정에 해당합니다. 중간 체계는 복수의 미시 체계로 구성된 체계이고 가정과 학교와의 관계에 해당합니다. 외체계는 그 주체가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지 않지만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장면으로 예를 들면 부모의 직장이 이에 해당합니다. 거시 체계는 다른 모든 하위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 차원의 환경을 말하며 예를 들면 성 역할 분업에 관한 가치관이 이에 해당합니다. 각 주체는 이러한 다층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이 관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가령 다루기 어려운 기질을 가진 아이가 응답성이 낮은 양육자나 경제적으로 곤란한 가정 상황 하에서 자란다고 해도 그 아이의 성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와이의 카우아이섬(하와이 제도에서 네 번째로 큰 섬. 울창한 밀림과 반짝이는 해변의 변화가 풍부하여 세계적인 영화인들과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곳으로 유명)에서 1955년 태어난 모든 아이 698명을 중년기까지 추적조사를 한 연구(Werner et al., 2001)에서 가정의 빈곤이나 부모의 정신질환, 불화 등의 높은 위험요인을 발달 초기에 가지고 있거나 10대에 비행이나 정신적인 문제를 보인 아이라 하더라도 그 아이의 성장환경에, 돌봐주고 애정을 쏟아부어주는 지원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양호한 발달을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아이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요인으로부터 여러 층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거의 거론하지 않았던 거시 체계에 대해서도 한층 더 고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양육자가 육아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말하거나 주변에 부탁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는 가정에서 양육상의 과제를 안고 있는 가족을 돕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정환경으로부터 성격을 생각할 때 이처럼 배경에 있는 여러 체계와의 관계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브런치 북 [대인관계를 위한 성격심리 이해하기] 총 21개 목차의 마지막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