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와 그녀가 내 삶에 들어온 후, 나는 전에 없던 충만함을 느끼고 있었다. 퇴근 후 나를 반기는 코코의 따뜻한 온기, 주말이면 녀석의 엉뚱한 행동에 함께 웃는 그녀의 모습. '안정감'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완벽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싶었다.
우리는 서로의 서툰 부분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으며,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적어도 그때까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갈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안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2017년, 어렵게 내 집을 마련하고
새로운 보험사로 이직해 팀을 스무 명 규모로 키워내면서, 나는 또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내 판단이 곧 팀의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은 묘한 성취감을 주었고, 높은 수입은 자존감을 하늘로 치솟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빠른 속도만큼 실패도 빠를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끝없이 더 높이 오르는 만큼, 더 큰 추락이 나를 기다릴 것만 같았다. 그 두려움이 오히려 나를 더 열심히 일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나는 눈앞의 성공에만 들뜬 채, 뒤에 닥칠 파도의 그림자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0년, 세상은 우리에게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던졌다. 뉴스에서는 연일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쏟아져 나왔고, 순식간에 사람들의 일상을 집어삼켰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우리를 덮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들이, 점점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재택근무가 권장되고, 사람들은 마스크 없이는 외출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연했던 만남들이 하나둘 취소되고, 그녀와의 데이트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벽에 부딪혔다.
“주말에 영화 볼까 했는데… 넷플릭스 데이트로 바꿔야겠네.”
어색하게 웃는 그녀의 말에 나는 애써 괜찮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심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제 막 서로에게 익숙해지려던 참인데, 이렇게 멀어져야 한다니. 관계의 발전이 멈춰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회사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내가 이끌던 스무 명 규모의 보험 영업 조직은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영업은커녕,
외근조차 할 수 없게 되면서 현장은 마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평소 아날로그에 익숙했던 팀원들은 온라인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애를 먹었고, 우리는 하루 종일 화상 회의에 매달려야 했다.
고객센터는 밀려드는 문의 전화로 마비 상태였다.
"지점장님, 오늘만 해지 요청이 스무 건이 넘었습니다. 직장인분들 해고되시는 경우도 많고, 자영업자분들도 가게 문 닫으면서 더 이상 보험료 내기가 힘들다고들 하시네요…"
팀장들의 보고에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직장인들은 해고의 불안에 떨었고, 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는 일이 속출했다.
이로 인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가입했던 보험 및 금융상품 해지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어렵게 쌓아 올린 팀의 실적이 빠르게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유형의 클레임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기존 고객들의 해지 요청까지 겹치면서 영업 조직의 숨통을 조여왔다.
사무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바뀌는 정부 지침에 맞춰 업무 프로세스를 수정해야 했고,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허둥지둥했다.
나는 지점장으로서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팀원들을 독려해야 했지만,
나 스스로도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람들은 자기 건강, 그리고 경제적 문제에 가장 민감하죠. 지금이 딱 그래요. 다들 불안해서 보험에 매달리는데, 정작 돈이 없어서 해지하는 겁니다.”
점심시간, 한 팀원이 내뱉은 말은 뼈아프게 와닿았다. 우리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먹고 사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정작 그 불안을 해소해주어야 할 우리는,
내부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날 밤,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코코가 내 발치에 와 부볐다. 녀석의 따뜻한 온기에 겨우 숨통이 트였다.
소파에 앉아 녀석을 안고 있자니, 문득 얼마 전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서로의 서투름을 감싸 안고, 솔직한 대화로 관계의 매듭을 풀어갔던 그때. 외부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과연 그 단단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작은 평화가, 이 관계가, 이 혼란 속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동시에 결심했다. 코코에게 배운 책임감으로,
그녀와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지켜내리라.
그리고 이 거친 파도를 넘어, 내 삶과 사랑을
지켜내야만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