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가 내 세상의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퇴근 후 나를 반기는 작은 생명체, 무릎에 올라와
잠드는 따스한 온기.
나는 그 평화로운 안정감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더는 무언가로 내 삶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특히 ‘연애’라는, 시작과 끝이 늘 요란했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더더욱.
그래서 친구가 “괜찮은 사람 있는데 한번 만나볼래?”라며 ‘소개’를 제안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거절하려했다. 과거의 연애는 내게 씁쓸한 뒷맛만 남겼다.
이기적인 자존심과 서툰 표현은 번번이 관계를 망가뜨렸고, ‘남자니까’라는 어설픈 갑옷 뒤에 숨어 상처를 주고받기 일쑤였다.
그런 감정 소모를 다시 겪을 자신이 없었다.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거절의 말을 고르며 소파에 앉아있는데,
코코가 겅중 뛰어올라와 내 배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르릉…” 작게 울리는 진동을 느끼며 녀석의 등을 쓸어주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이 작은 생명 하나를 온전히 책임지고 있구나.
매일 밥을 챙기고, 묵묵히 곁을 지키며 안정감을 주는 일. 나도 누군가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구나.
이 작은 평화는 내가 직접 만든 것이다. 어쩌면, 한 번쯤 더 용기를 내봐도 좋지 않을까. 나는 친구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래, 만나볼게.”
그렇게 그녀를 만났다. 어색한 첫 만남,
나는 애써 나를 포장하는 대신 코코의 집사로서의
나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주말엔 고양이와 뒹구는 게 낙이고, 옷에 고양이 털이 붙어있는 건 일상이라는 ‘TMI’를 늘어놓았다. 과거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끊지 않고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었다.
관계에 조그마한 트러블이 생긴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서로의 생활 패턴이 달라 생긴 사소한 오해였다. 예전의 나라면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괜한 자존심을 세우며 입을 닫거나, ‘이 관계도 결국 똑같군’이라며 성급한 단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코코에게 배운 방식으로 행동했다.
녀석이 아플 때 원인을 살피고 조심스럽게 돌봤던 것처럼, 나는 감정을 앞세우는 대신 문제 그 자체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금은 쑥스럽게,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이런 부분이 이렇게 느껴졌어. 혹시 내가 오해한 게 있을까?” 놀랍게도, 그녀의 반응은 단단하고 명료했다. “그렇게 생각했구나.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설명해 줄게.” 복잡할 것 같던 문제는 담백한 대화 몇 마디에 눈 녹듯 사라졌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관계의 매듭을 푸는 경험은, 내게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몸만 큰 아이’였는지 깨달았다. 나의 성숙한 대처라고 생각했던 행동조차, 사실은 그녀의 성숙함이 판을 깔아준 덕분이었다.
내가 용기를 내 속마음을 꺼냈을 때, 그녀는 판단하거나 비웃지 않고 온전히 받아주었다. 나의 서투름이 채 드러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어른의 방식으로 나를 이끌어준 것이다.
그녀가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 나는 내심 긴장했다. 나보다 더 까다로운 진짜 집주인, 코코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현관 앞에 버티고 선 코코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훑었다. 그런데 그녀는 다짜고짜 다가가 손을 내미는 대신, 멀찍이 서서 코코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려주었다. 한참의 탐색전 끝에 코코가 다가가 그녀의 손에 코를 킁킁거렸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코코가 내게 보내는 ‘합격’ 신호처럼 느껴졌다.
늦은 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봤다.
그녀의 무릎에는 코코가 식빵을 굽고 있고, 나는 그 평화로운 풍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코코가 내 삶에 가져온 것은 단순한 안정이 아니었다.
과거의 실패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한번 관계를 향해 나아갈 용기, 그리고 서툴고 미숙한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지혜였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 느리지만 단단한 방식으로
서로의 세계에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