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코코의 온기가 머무는 일상

by 데미안

새하얀 봄날 우리 집에 고양이가 온 지 몇 달이 흘렀다.이름은 코코로 정했다.

별 뜻은 없으나, 코코 샤넬의 코코를 따왔다고 치기로 했다.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만 해도 낯설어하던 코코는 이제 내 일상 깊숙이 스며들었다.

조용하던 집은 코코의 존재로 한결 따뜻해졌다. 나는 문득, 코코가 없던 이전의 집 풍경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건 다름 아닌 코코다. 문 열리는 소리에 작은 발소리가 서둘러

다가오고, 이내 들리는 “야옹” 하는 목소리. 현관 앞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코코의 눈빛에는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린 그리움이 담겨 있다. 신발을 벗기도 전에 코코는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인사를 건넨다.

긴 하루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다.


코코는 유독 나에게만 이런 애정을 보인다. 다른 사람이 집에 오면 녀석은 숨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 경계심을 드러낸다. 낯선 손길을 피하고, 좀처럼 마음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내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럽다.

내가 소파에 앉으면 어느새 옆에 와서 몸을 기댄다. 유일하게 마음을 연 상대가 나라는 사실에 작은 책임감과 함께 묘한 뿌듯함이 느껴진다.


그런 코코에게도 특별한 취미가 하나 있다.

보통의 고양이들과 달리 코코는 차를 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눈치였다. 어느 주말, 집 안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져 코코를 차에 태워본 적이 있다.

창밖을 보며 불안해할 줄 알았는데, 코코는 조용히 창가에 앞발을 얹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날부터 주말이면 코코와 함께 짧은 드라이브를 나가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고요한 차 안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은 특별했다. 라디오를 꺼 둔 채 창밖으로 흘러가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면, 코코도 조용히 눈을 깜박이며 바깥 세상을 구경한다. 차창 너머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와 코코의 하얀 털을

부드럽게 비춘다. 가끔 코코는 창문을 살짝 열어 준 틈 사이로 코끝을 가져다대고 바깥 공기를 맡는다.

그 평화로운 옆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진다.

말없이 함께하는 이 순간들이 우리 사이에 묵직한 기억으로 쌓여 간다.


일상이 항상 평온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한번은 작은 사건이 있었다. 평소처럼 출근 준비로 분주하던

어느 아침, 코코가 현관문 틈새에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내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코코의 앞발이 문쪽으로 뻗었고, 마침 문이 닫히면서 그만 그 다리가 문틈에 끼이고 말았다. “야옹!”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놀란 코코를 얼른 품에 안고 급히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병원에서는 약간의 타박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진료실에서 코코는 처음엔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호기심을 보이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청진기를 장난감처럼 앞발로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진료대 위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긴장을 풀었다. 간호사분이 “용감한 아이네요” 하고 웃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코코의 천진난만한 행동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났다.

아픈 와중에도 장난을 치려는 녀석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특하던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품속에서 잠든 코코를 바라보다가 코코라는 이 작은 생명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 후로 나는 코코를 더욱 세심히 살피게 되었다. 다리가 완전히 회복되는 동안 코코는 평소보다 나에게

더 바싹 붙어 지냈다. 밤에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배 위로 올라와 앉는데, 금세 “골골” 소리를 내며

꾹꾹이를 시작한다. 포근한 담요라도 주무르듯 리드미컬하게 앞발을 눌렀다 폈다 하는 그 모습.


작은 앞발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어딘가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코코의 꾹꾹이는 내게 언제나 특별한 위로다. 하루 중 가장 평온한 이 순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오롯이 느껴진다.


코코의 또 다른 일상 루틴은 일명 ‘궁디팡팡’이다. 처음에는 그 말의 뜻을 몰랐지만,

코코는 종종 내 손을 자기 엉덩이 쪽으로 가져가려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머리로 내 손을 몇 번이고

밀더니 이윽고 몸을 돌려 엉덩이를 살짝 들어 보였다.


그 자세를 취할 때마다 나는 웃음이 나면서도, 손바닥으로 코코의 엉덩이 위를 토닥여 준다.

톡톡, 리드미컬하게 등을 두드려 주면 코코는 꼬리를 바짝 세우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작은 엔진처럼 울려 퍼지는 골골송의 진동이 손끝으로 전해져 온다. 우리 둘만의 은밀한 대화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하루 중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코코는 거실 창가에 앉아 세상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전깃줄 위로 참새들이 날아오르고, 멀리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보이면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한다.

때로는 내가 옆에 다가가 앉으면 코코가 한 번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비록 말은 없지만, 함께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고요한 그 순간 우리는 같은 평온함 속에 잠긴다.

코코의 귀끝이 방향을 따라 살짝살짝 움직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는 코코의 작은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켠이 따뜻해진다.


코코와 함께하며 내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예전엔 적막하기만 하던 집이 이제는 가장 편안한 안식처가 되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을 겪은 날에도

현관 앞에서 날 기다릴 코코를 떠올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집에 들어설 때 들려오는 반가운 울음소리, 그리고 살며시 다가와 몸을 비비는 작은 온기가 나를 위로해준다. 혼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안정감과 책임감이 내 삶에 자리 잡았다. 작은 존재를 돌보고 사랑한다는 것,

그로 인해 내 하루가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를 코코를 통해 배우는 중이다.


늦은 밤, 불을 끄고 누우면 코코는 내 옆자리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리를 잡는다.

고르고 잔잔한 숨소리가 어둠 속에 퍼지고, 나 역시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는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골골송에 마음이 포근해진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조용했던 내 삶에 찾아와 준 이 작은 고양이는 이제 단순한 반려동물을 넘어 내 가족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하루하루 쌓여 가는 추억만큼 유대도 깊어지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 속에서 코코는 내 삶에 더욱 깊숙이 스며들겠지.


그렇게 우리는 함께 나이 들어가며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 줄 것이다.

내가 써 내려갈 다음 이야기 역시 조용하지만 온기 가득한 날들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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