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소개팅 날,
노을빛이 스며든 카페 창가에서 그녀와 마주했다.
그 순간 내 심장은 오랜만에 크게 뛰었다.
내가 그려온 이상형이 바로 눈앞에 앉아 있었다.
환하게 웃을 때 살짝 패이는 보조개와 말끝마다 번지는 밝은 웃음소리에 금세 마음이 끌렸다.
어색하게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부드럽게 이어졌고, 나는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인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몇 번의 만남 끝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출퇴근길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통화를 했고,
퇴근 후엔 함께 저녁을 먹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낯선 서울 생활 속에 그녀의 존재는 마치 따뜻한 불빛처럼 스며들었다.
혼자 보내던 주말은 이제 둘만의 작은 여행이나
데이트 계획으로 가득 채워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낯설기만 하던 이 거리가,
이제는 그녀와 함께 걷는 설렘의 무대가 되었다.
하지만 행복한 연애의 시작은 내 일상에 작은 균열도 함께 데려왔다. 그녀의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활기찬 생활에 내 발을 맞추다 보니, 내가 지켜오던 규칙적인 생활 패턴이 서서히 무너졌다.
평소 같으면 잠들었을 시간에도 그녀와 통화를 하느라 새벽까지 깨어 있곤 했다.
주말마다 하던 빨래와 청소는 자꾸 미뤄졌고,
아침 운동을 거르기 일쑤였다.
피곤이 쌓여 회사에서 꾸벅 졸 뻔한 날도 있었지만,
그녀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달콤해서 좀처럼
조절할 수가 없었다.
감정의 온도도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내렸다.
함께 있을 때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지만, 피로와 공허함에 문득 불안해졌다.
내 생활은 엉망이 되어가는데도, 그녀의 환한 웃음 한 번이면 그런 걱정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스스로 ‘이대로 괜찮을까’ 고민해 보지만, 사랑 앞에서 나약해지는 나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균열 사이로 흘러들어온 변화들은 나를
흔들었지만, 그 흔들림마저도 젊은 날의 특별한 진통이라 여겼다.
무엇보다도 무너진 일상 속에서 피어난 이 행복이 너무도 소중했기에 나는 그 시간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주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출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내 얼굴에는 밤새 뒤척인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마음 한켠은 이상하게도 가볍고 설레었다.
회사에 도착해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정신을 깨우고 자리에 앉았다. 한때 낯설기만 했던 사무실 풍경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느껴졌다.
서울에 올라와 첫 출근을 하던 날 가슴 졸이던 내가 이렇게까지 적응하다니 스스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얼마 전 맡았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덕분일까. 그날 오전 팀 회의에서 부장님은 내 이름을 부르며 모두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 잘하고 있어. 앞으로가 더 기대돼.”
쑥스럽지만 뿌듯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점심시간엔 선배들이 다가와 축하한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마음속에서는 뜨거운 성취감이 조용히 피어올랐다.
어느 날, 인사팀에서 승진 관련 공지가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이름도 승진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서울로 올라온 지 엊그제 같은 오늘,
벌써 승진을 논할 위치에 서 있다니 꿈만 같았다.
퇴근길 내내 휴대전화로 공지사항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싶어 반복해 읽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
일하는 동료들의 모습도,
축하 전화를 걸어온 부모님의 목소리도 하나하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밤늦게 창밖을 올려다보니 서울의 불빛이 오늘따라
더 반짝이는 듯했다. 마침내 모든 것이 뜻대로 풀리는 순간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사랑도 일도, 내 삶의 퍼즐조각들이 서서히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행복은 영원히 머무는 법이 없다고들 한다.
그 밤, 나는 손에 쥔 작은 행복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며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