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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원 Jul 05. 2019

교양으로써의 여행



 여행은 교양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한다. 내 주변만 봐도 휴가 때 국내로, 해외로 여행을 떠나려는 친구들이 많다. 요즘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최근 다녀온 여행에 대한 질문도 자주 받는다. 으레 묻는 음악, 영화, 책 같은 보편적인 취미에 이제는 여행도 포함된 것이리라.




 여행의 대중화로 인해 좋지 않은 것도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바로 '여행 신성론자들'이다. 내가 이름 붙인, 이 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이들은 세 가지 특성이 있다. 맹신과 계급의식 그리고 무시가 그것이다.

 첫 번째, 여행의 대한 맹신. 여행 신성론자들은 여행을 신성시하고 맹목적으로 믿는다. 여행을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한다. 이들은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행 가기 전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마음의 병도 치유되었으며 앞으로의 삶은 희망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두 번째, 계급의식. 맹신에서 더 나아가면 이들은 자신과 타인을 여행 신성론자와 비(非)신성론자 계급으로 나눈다. 그리고 자신이 더 우월한 여행 신성론자 계급을 가진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 자신과 비슷한 여행 신성론자가 있으면 여행자 계급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여행비용 계급과 특수 여행지 계급.


 여행비용 계급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여행 기간이 길고, 먼 곳으로 갔던 ‘비싼' 여행을 이야기한다. (물론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은근하게 말한다. 다른 사람이 비용을 물어볼 때까지 금액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슷한 비용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과 무리를 짓는다.

 특수 여행지의 대한 계급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나라 혹은 제3세계 나라들을 다녀온 것을 이야기하며 역시 특별한 곳을 갔다 온 사람들과 무리를 짓는다.

 

 재밌게도 이 두 계급도 우위가 있다. 어떤 자리에서 많은 비용을 쓴 여행자와 특수한 여행지를 다녀온 사람이 있다면, 보통 후자가 계급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리고 후자의 여행 이야기를 길게 듣게 된다.

 세 번째, 비신성론자들을 향한 무시. 말 그대로 무시다. 하지만 여행 신성론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무리를 짓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렇기에 무시는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녀온 여행에 대해 말하고 타인의 반응을 살핀다. 자신보다 더 비싸고 특별한 여행을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따라서 이들의 무시는 직접적인 표현이나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확실히 비신성론자임을 알아채고 무시할 땐 보통 무관심하게 대하거나 불쌍하게 여기거나 동정한다.




 여행 신성론자의 이런 특성들은 어쩌면 당연하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면 맹목적이게 되니까. 그리고 시대를 막론하고 계급의식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존재했을 것이다.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들?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내가 불만인 것은 그들이 여행 후 유치한 우월감에 젖어 여행 다니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는 탓에 여행의 의미가 훼손된다는 점이다. 여기서부터 나는 그들이 했다는 여행의 대해서 의심을 품게 된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데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데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여행은 비슷하다. 이국적인 풍경과 새로운 사람들과 음식. 그리고 휴식. 그곳에 이민 가지 않는 한, 보통 사람들이 한 여행지에서 보내는 기간은 길어야 30일 안팎일 것이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지 못했다면, 여행이란, '여행지에 사는 현지인들의 노동을, 낭만처럼 느끼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여행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여행 신성론자들은 계급을 나누려고 힘쓰다가 보편을 잊어먹은 듯하다. 비싼 여행지든 특수한 여행지든 결국엔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말이다. 여행하면서 햄버거를 먹든 달팽이 요리를 먹든 배고프면 밥 먹어야 하고, 트램을 타든 유로스타를 타든 이동수단 타려면 돈 내야 하고, 미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 땐 실례합니다 라고 해야 한다. 나라마다 다를지언정 사람 사는 곳에 다 있는 보편 상식. 여기가 아닌 어딘가도, 어딘가 아닌 여기도 똑같은 곳일 뿐이다.
 
 그리고 궁금하다. 정말 자신이 원해서 여행을 가는 것일까. 휴가 때 모두가 여행을 가니까 여행을 가는 것은 아닌지. 여행사 광고와 마케팅에 현혹된 것은 아닌지. 미디어에서 요즘 대세 여행지라고 나오는 곳을 다녀오지 않으면 뒤처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은 아닌지 말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 여행사의 광고,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여행을 원하게 만든다면, 이걸 정말 내가 원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알고 있다. 여행은 문제가 다르다는 것을. 음악과 영화, 책은 적은 비용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 반면에 여행은 많은 물적, 시간적 비용이 들고 쉽게 할 수 없다. 이제 여행이 현실의 사회적 계급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평소의 소비 보다 큰 쇼핑으로써 여행을 하고 싶지 않다.




 여행은 나에게도 분명 교양이 됐다. 하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내게 교양으로써의 여행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종류의 것이다. 음악, 책, 영화와 다를 게 없다. 제대로 일상을 향유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여행도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통해 얻고 싶은 그 신선한 자극은, 느끼려고 노력한다면 지금 내 주변 어디에나 있고, 느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비싸고 특별한 여행지에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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