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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원 Nov 18. 2021

의미가 있어

 

 할 일이 많을 때, 마음만 바쁘고 정작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촬영감독님은 내 시나리오를 보고 긴 침묵을 가졌다. '좋긴 한데... 너무 잔잔하지 않아?' 그리고 엔딩씬에 참고할만한 영화를 알려줬다.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 <애정만세>. 이 영화 마지막 매우 긴 롱테이크 통곡 씬을 얘기하면서, 내 영화 라스트씬에서도 주인공을 통곡하게 고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엔딩에서 배우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길게 가져가면, 관객도 영화 내내 이어져 온 감정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아니 그래도 요즘 시대에 마지막 장면에서 통곡이라니? 옆에 있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친구도 촬영감독님의 말이 의아한지 날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내가 울고 싶었다.


 <애정만세> 란 제목은 왕가위의 <타락천사>를 떠올리게 했다. 왕가위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타락천사' 라는 중2병스러운 제목은, 왕가위 감독의 작품 중 타락천사를 가장 늦게 게 만들었다. '제목이 애정만세 라니... 쉽지 않다, 쉽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며 유튜브에서 애정만세를 검색했다. 1994년 작임을 감안해도 매우 안 좋은 화질의 영상 하나가 있었다. 라스트씬 전체는 총 6분 23초였다. 주인공이 걷는 거 빼고, 벤치에 앉는 거 빼. 우는 장면은 2분 12초. 촬영감독님 통곡이라고 들었어서, 울다가 옷 쥐어뜯, 무릎 꿇고 쓰러지는... 그런 장면을 떠올렸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심심한 통곡이었다. 배우는 벤치에 가만히 앉아 움직임 없이 건조지만, 깊게 울었다. 조금씩 부는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배우의 통곡은 계속됐지만 전혀 슬프지 않았. 끝에는 웃는 거 같이 보였다.


 엔딩 씬이 써있는 워드창을 한참 보다가, 쉼표 하나를 겨우 마침표로 바꿨다.  눈엔  바꿀 것이 없어 보였다. 정확히는 바꾸고 싶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너무 오래 봐서 객관성을 잃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워드를 껐다. 졸업작품 시나리오도 써야 하는데 소재, 아이디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 실습작품 시나리오에서 이미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 같았다. 죽음과 보이지 않는 것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것. 그 외에 특별히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았다.


 워드를 끄고 난 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최근 바빠 돌리지 못했던 빨랫감이 보였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 밀려있던 빨랫감들은 다시 내일로 미뤘다. 요즘 우선순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해야 일이 많아지면 마음은 더 바빠졌다. '해야 할 일이 많을 땐 우선순위를 정해서 중요한 것들을 먼저 해야 합니다.' 살면서 수없이 들어왔던 말. 그럼 오늘 내 우선순위에서 밀린 일들은 오늘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가? 내일 내 우선순위에 드는 것들은 내일 내게 의미가 생기는 건가. 그러다 나는 왜 이 시나리오를 영화화 하고 싶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나리오가 영화화 되어 내 우선순위에서 사라진다면, 이 영화는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지금도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일기 같은 글. 물론 일기 같지 않은, 좋은 에세이를 쓰고 싶다. 하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은 즐겁지만 너무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계속 일기 같은 글들만 썼다. 이젠 하고 싶은 얘기가 다 떨어진 것 같다. (1)에세이 쓰는 일이 버거워진 것. (2)내 마음속에 있던 얘기들을 글로 다 써버린 것 같은 느낌.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에세이에서 나를 더 멀어지게 만든  모르겠다. 비슷 것 같다.


 애정만세. 이 반어법 같은 제목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사랑은 만세라고 긍정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할 일이 많을 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해야만 하는 일. 먹고사는 일에서 잠깐이라도 도피하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고 에세이를 썼던 게 아닐까. 이렇게 계속 그저 마음만 바쁜 채, 먹고사는 일과 애정 하는 일 사이, 지금 나는 어느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 들다. 이런 생각과 함께, 사실 이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고독하고 허무해진다. 근데 왜 제목은 애정만세 일까. 현대인의 소외와 외로움을 다룬 영화의 제목을 이렇게 지은 감독의 의도를 생각해본다. 너무 쉽게 추측 가능하다. 감독은 아마 누구보다 사랑의 의미를 찾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리라.


 애정만만세. 내 실습 시나리오 엔딩을 통곡으로 고치지 않은 것은 의미가 있다. 오늘 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빨랫감도 의미가 있다. 내 영화를 아무도 모른다 해도 의미가 있다. 이제 에세이를 쓰지 않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요즘 누가 사랑을 해요? 라고 묻는 네 질문도 의미 있고. 저는 아직 사랑을 해요. 라는 내 답도 의미가 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라는 네 말도 의미가 있고. '이것도 의미가 있어.' 라고 말하는 내 말에도 의미가 있다. 


 나도 롱테이크로 울어야지. 생각보다 심심하게. 벤치에 가만히 앉아, 움직임 없이 건조하게. 조금씩 부는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전혀 슬프지 않게. 우는 지 웃는 지 알 수 없게. 길게 울고 나면 오늘 내내 이어져 온 감정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거다. 바쁜 마음을 가라앉히면 어떻게든 다시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내일부터는 그럴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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