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많을 때, 마음만 바쁘고 정작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촬영감독님은 내 시나리오를 보고 긴 침묵을 가졌다. '좋긴 한데... 너무 잔잔하지 않아?' 그리고 엔딩씬에 참고할만한 영화를 알려줬다.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 <애정만세>. 이 영화 마지막 매우 긴 롱테이크 통곡 씬을 얘기하면서, 내 영화 라스트씬에서도 주인공을 통곡하게 고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엔딩에서 배우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길게 가져가면, 관객도 영화 내내 이어져 온 감정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아니 그래도 요즘 시대에 마지막 장면에서 통곡이라니? 옆에 있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친구도 촬영감독님의 말이 의아한지 날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내가 울고 싶었다.
<애정만세> 란 제목은 왕가위의 <타락천사>를 떠올리게 했다. 왕가위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타락천사' 라는 중2병스러운 제목은, 왕가위 감독의 작품 중 타락천사를 가장 늦게 보게 만들었다. '제목이 애정만세 라니... 쉽지 않다, 쉽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며 유튜브에서 애정만세를 검색했다. 1994년 작임을 감안해도 매우 안 좋은 화질의 영상 하나가 있었다. 라스트씬 전체는 총 6분 23초였다. 주인공이 걷는 거 빼고, 벤치에 앉는 거 빼면. 우는 장면은 2분 12초. 촬영감독님께 통곡이라고 들었어서, 울다가 옷쥐어뜯고, 무릎 꿇고 쓰러지는... 그런 장면을 떠올렸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심심한 통곡이었다. 배우는 벤치에 가만히 앉아움직임 없이 건조하지만, 깊게 울었다. 조금씩 부는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배우의 통곡은 계속됐지만 전혀 슬프지 않았다. 끝에는 웃는 거 같이 보였다.
엔딩 씬이 써있는 워드창을 한참 보다가, 쉼표 하나를 겨우 마침표로 바꿨다. 내 눈엔 더 바꿀 것이 없어 보였다. 정확히는 바꾸고 싶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너무 오래 봐서 객관성을 잃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워드를 껐다. 졸업작품 시나리오도 써야 하는데 소재, 아이디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 실습작품 시나리오에서 이미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 같았다. 죽음과 보이지 않는 것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것. 그 외에 특별히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게 더 생각나지 않았다.
워드를 끄고 난 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최근 바빠 돌리지 못했던 빨랫감이 보였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 밀려있던 빨랫감들은 다시 내일로 미뤘다. 요즘 우선순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해야 일이 많아지면 마음은 더 바빠졌다. '해야 할 일이 많을 땐 우선순위를 정해서 중요한 것들을 먼저 해야 합니다.' 살면서 수없이 들어왔던 말. 그럼 오늘 내 우선순위에서 밀린 일들은 오늘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가? 내일 내 우선순위에 드는 것들은 내일 내게 의미가 생기는 건가. 그러다 나는 왜 이 시나리오를 영화화 하고 싶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나리오가 영화화 되어 내 우선순위에서 사라진다면, 이 영화는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지금도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일기 같은 글. 물론 일기 같지 않은, 좋은 에세이를 쓰고 싶다. 하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은 즐겁지만 너무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계속 일기 같은 글들만 썼다.이젠 하고 싶은 얘기가 다 떨어진 것 같다. (1)에세이 쓰는 일이 버거워진 것. (2)내 마음속에 있던 얘기들을 글로 다 써버린 것 같은 느낌.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에세이에서 나를 더 멀어지게 만든 건지모르겠다. 비슷할 것 같다.
애정만세. 이 반어법 같은 제목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사랑은 만세라고 긍정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할 일이 많을 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해야만 하는 일. 그 먹고사는 일에서 잠깐이라도 도피하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고 에세이를 썼던 게 아닐까. 이렇게 계속 그저 마음만 바쁜 채로, 먹고사는 일과 애정 하는 일 사이, 지금 나는 어느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과 함께, 사실 이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고독하고 허무해진다. 근데 왜 제목은 애정만세 일까. 현대인의 소외와 외로움을 다룬 영화의 제목을 이렇게 지은 감독의 의도를 생각해본다. 너무 쉽게 추측 가능하다. 감독은 아마 누구보다 사랑의 의미를 찾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리라.
애정만만세. 내 실습 시나리오 엔딩을 통곡으로 고치지 않은 것은 의미가 있다. 오늘 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빨랫감도 의미가 있다. 내 영화를 아무도 모른다 해도 의미가 있다. 이제 에세이를 쓰지 않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요즘 누가 사랑을 해요? 라고 묻는 네 질문도 의미 있고. 저는 아직 사랑을 해요. 라는 내 대답도 의미가 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라는 네 말도 의미가 있고. '이것도 의미가 있어.' 라고 말하는 내 말에도 의미가 있다.
나도 롱테이크로 울어야지. 생각보다 심심하게. 벤치에 가만히 앉아, 움직임 없이 건조하게. 조금씩 부는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전혀 슬프지 않게. 우는 지 웃는 지 알 수 없게. 길게 울고 나면 오늘 내내 이어져 온 감정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거다. 바쁜 마음을 가라앉히면 어떻게든 다시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내일부터는 그럴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