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해도와 모란화병도
12월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1월부터 하루 더 배우고 있어요.
일주일에 두 번, 3~4시간씩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있어요. 월요일에는 주민센터에서, 화요일에는 왕복 3시간 거리를 오가며 배우고 있어요.
남이 시키면 짜증 나고, 귀찮아 싫겠지만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군소리 없이 열심히 배우러 다녀요.
좋은 스승님을 만나 배움의 즐거움에 빠져서 한 달 반 만에 어해도와 모란화병도를 완성했어요.
어해도는 물고기 비늘과 연꽃 바림을 해보는 것이 핵심이었어요. 여백의 미가 마음에 안정감과 정서적 여유로움을 느끼게 했어요.
모란화병도는 본을 뜨는 작업부터가 어려웠어요. 세밀하게 국화꽃과 화병 그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민화는 인내심이 필요해요. 침착하게 차분하게 마음을 비우고 집중을 해야 하죠.
민화는 자신과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해요. 내가 들인 시간만큼 완성도가 높아져가고 아름다워져요.
민화를 그리면서 어깨가 아프기도 하고, 눈의 피로도가 커지고, 다른 것에 할애할 시간이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지요.
어해도와 모란화병도는 1월 23일부터 2월 27일까지 6주, 총 42시간 이상 소요되었어요.
3월 들어 수강하는 과목이 많아져서 글을 쓸 시간이 여의치 않았기에 민화일지로 대신해요.
정의 :
물고기와 게 등 바다 생물을 그린 그림. 어락도
연원 및 변천 :
어해도의 ‘어해(魚蟹)’라는 용어는 7세기 중국의 역사서인 『북사』에 처음 등장하였다. 그러나 어해도라는 용어는 송대 『선화화보(宣和畵譜)』(1120년 편찬)에 3세기 화가 원의(袁嶬)의 어해도가 황실에 보관되어 있다는 기록이 처음이다. 이를 통해 송대에 어해도라는 장르가 이미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송대에는 쏘가리, 잉어를 그린 궐어도(鱖魚圖), 이어도(鯉魚圖) 등 어도(魚圖)와, 게를 수생 식물과 함께 그린 해도(蟹圖)가 전해져 어해도는 이들과는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 유추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 『동문선』에 공민왕의 잉어를 그린 그림인 「이어도」에 대한 찬문이 있어 고려시대에도 어해도라는 장르 개념이 없었으며, 조선 중기까지는 관련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어해도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김창업(金昌業)이 1712년 연행 시 마유병(馬維屛)의 집에서 「어해도」 병풍을 보았다는 기록과 이덕무가 「해어도(海魚圖)」를 평문했다는 기록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어해도라는 장르 개념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내용 :
어해도는 단일 종류의 물고기인 쏘가리, 잉어가 바닷속에서 유영하는 모습을 게, 새우 등 바다 생물과 함께 그린 유형이 있고, 수많은 물고기가 유영하는 모습을 그린 유형도 있다. 송대 어도, 해도, 어해도가 별도로 존재했던 것과 달리 고려시대와 조선 전‧중기까지 어해도는 정립되지 않았고 어도와 해도가 별도로 그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이후에 물고기와 게가 함께 등장하는 어해도가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시기는 대량의 물고기와 게를 그리기 위해 족자, 화첩뿐 아니라 병풍으로 많이 제작되었는데 8폭, 10폭이 일반적이었다. 이들 작품은 모두 치밀한 사생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어해도는 다양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어해도에 등장하는 잉어는 등용문 고사와 연관시켜 남성의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쏘가리, 게, 거북도 입신양명과 연관이 많은데 쏘가리는 궐(鱖)로 궁궐(闕)과 동일한 의미로, 게와 거북은 등껍질인 갑(甲)과 과거급제의 갑(甲)과 동일한 의미로 쓰여 입신양명과 연관이 있다. 입신양명의 의미뿐 아니라 부귀와 다산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는데 물고기 어(魚)와 남을 여(餘)의 중국어 발음이 유사하여 풍족한 삶을 상징하였다거나 물고기의 알이 많은 것을 들어 다산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현황 :
조선 후기 이래로 어해도를 잘 그린 화가로는 김인관(金仁寬), 장한종(張漢宗), 장준량(張駿良), 조정규(趙廷奎), 조석진(趙錫晋), 지창한(池昌翰)이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김인관의 「산수어해화훼초충도권」 중의 「어해도」나 장한종의 「어해도」 8폭 병풍, 「어해화첩」, 조정규의 「어해」 8폭 병풍(이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조정규의 「어해」 10폭 병풍(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이한철(李漢喆, 18081880년 이후)의 「어해도」 10폭 병풍(순천대학교 박물관 소장) 등을 들 수 있다.
의의와 평가 :
18세기 이후 조선시대 어해도의 특징은 중국과는 달리 화훼, 산수가 결합되거나 장한종 이후에는 병풍으로 제작된 점이다. 이는 당시 어해도가 과거를 보는 선비나,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길상의 의미를 지닌 선물이나 집안의 장식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출처;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화병도는 화합과 평안을 상징하며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이 꽂혀있으면 평안, 부귀를
불수감, 석류, 복숭아를 조합하면 다복, 다수, 다남자의 의미가 더해지며
화병도로 집을 장식하면 가정에 평안과 온갖 복을 가져다준다고 여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