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마리오네트를 내려놓는 용기

: 줄을 놓으니, 너가 보였다

by 이말리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 —

그것은 내가 만들어 낸 상(像)을 내려놓고, 실제 사람과 마주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타고난 직관력으로 처음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직관은 살아가면서 때로는 도움이 됐지만, 오히려 그것이 선입견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첫인상이 좋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 알아가면서 좋은 사람임을 발견하기도 했고, 반대로 처음엔 좋게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이거나 오랜 인연에게서 오는 선입견은 더 강했다. 그 사람의 서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미리 만들어 놓고, 실제 그 사람의 모습과의 거리감으로 인해 자주 힘들어했다. 마치 내가 만들어 낸 마리오네트로 무대 위에서 인형극을 하듯이 말이다. 이 인형극 속에서는 줄을 조종하는 나도, 그 인형이 되어 움직여야 하는 상대방도 모두 힘들고 지쳐갔다.


그러던 중에 깊은 친구 관계에서 반복되는 오해와 갈등이 쌓이면서, 더 이상 내가 상상하던 이상적인 모습(마리오네트)만으로는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번 기대했던 반응은 오지 않고, 서로 상처만 주고받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결국 이대로라면 관계를 완전히 정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각오까지 하며, 내가 만들어 낸 마리오네트를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이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갈등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있는 그대로의 그 친구의 모습과 내가 만들어 낸 허상에 대해 솔직히 고백했다. 사지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지막 용기를 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한쪽 문이 열린다고 한다. 놀랍게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 알아차림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가져왔다. 물론 어느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그 친구 사이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작은 틈이 생겼다. 그 틈 사이로 끓어오르는 서로의 감정을 식힐 수 있는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갈등 상황 속에서도 그 갈등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감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더 이상 서로를 상처 주지 않고 대화를 이어갈 힘도 생겨났다. 서로의 진짜 모습을 인정하니, 오히려 관계는 더 깊어지고 단단해졌다.


우리는 종종 타인에 대한 기대와 상상 속에서 관계를 맺는다. 머릿속에서 그려낸 완벽한 모습을 상대방에게 덧씌우고, 그 이미지에 맞추어 살아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진정한 관계는 내가 만든 이미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시작된다. 마리오네트를 내려놓는 용기는 비록 두렵고 불안한 과정이지만, 그 순간 우리는 가식적인 무대를 벗어나 진실된 관계의 문을 열게 된다.


이제 나는 깨달았다. 관계의 갈등은 종종 내가 만든 허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은 단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 더 깊고 진실된 관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알아차림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준다.


결국,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은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도 자유롭게 한다. 타인에 대한 통제와 기대를 내려놓음으로써, 역설적으로 나 자신도 타인이 만들어 놓은 역할에서 벗어나 진짜 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해방의 시작점이며, 모든 진실된 관계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가끔은 그 친구에게서 내가 만들어낸 마리오네트 인형이 비춰질 때도 있다. 인형은 이제 무대 위가 아닌 나의 지나간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자리에는 이제 서로의 그림자까지 사랑하는, 아니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법을 배워가는 실제의 관계가 자리 잡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짜이기에 더 아름다운 관계.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린 환상을 좇는 대신, 손에 잡히는 현실의 온기를 느끼며 살아가는 법을 찾아간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렵지만 가장 값진 용기의 결실임을 매일 조금씩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진짜 관계는, 내가 만든 상(像)을 내려놓을 때 시작됩니다

혹시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마음속 무대 위에 세워두고 있진 않나요?


다음 목요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따라
‘완벽해야만 사랑받는 존재’였던 아이의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합니다.
상처 입은 내면의 목소리를 마주하며,
타인에게 씌운 기대와 오해의 실을 조금씩 풀어가는 여정.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도,
그 실을 놓고 싶은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