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편. 그저, 내가 그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뿐
《가면을 벗는 연습》 3편
— 나로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우리는 종종 가면을 벗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오랜 시간 가면에 대해 생각했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벗어야만 하는 껍데기 같은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껏 가면을 쓰고 살아온 내 시간들은 얼마나 무의미했던 걸까?
그 생각은 나를 깊은 죄책감으로 밀어 넣었다. 진짜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왔다는 자책, 사람들은 나를 만난 것이 아니라 나의 가면만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는 회의. 그래서 모든 관계마저 허상처럼 느껴졌다.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더 이상 숨지 않기로, 진짜 나로 살아보기로. 하지만 막상 가면을 벗으려 하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가면이 너무 오래 내 얼굴에 붙어 있었기에, 어디서부터가 가면이고 어디서부터가 나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익숙하게 꺼낸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멈추게 했다.
'전 괜찮아요.'
그 말이 입에 먼저 닿던 순간, 문득 마음이 느리게 따라오는 걸 알아챘다. 입으로는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정작 마음은 그 말을 따라가지 못하고 한참 뒤에야 뒤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해 오던 익숙하던 말과 표정들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정말 괜찮았던 걸까? 그 질문이, 생각보다 오래 내 안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깨달았다. 내가 가면을 벗으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언제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가면을 벗기 전에, 먼저 내가 그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부터 알아차려야 했다.
오래된 습관처럼 반복되던 말들과 표정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 나는 자주 웃었고 자주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그 가면을 나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가면은 내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만들어낸 하나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작 중요한 깨달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가면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심지어 나를 지켜주는 얇고 단단한 막이 되어준 때도 있었다. 두려울 때는 웃는 얼굴의 가면이, 무례함 앞에서는 단호한 표정의 가면이 필요했었다. 그건 결핍으로 얼룩진 나를 살아남게 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가면을 내가 쓰고 있다는 걸 잊었을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를 놓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가면을 쓴다. 다만 이제는 안다. 내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를. 어떤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지키기 위해 그 가면을 선택했는지를.
이 자각이 생긴 이후부터, 나는 가면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가면은 벗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옷 같은 것이었다.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을 때 벗으면 된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내 손에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가면을 벗는 것도, 가면을 쓰는 것도, 결국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를 고요하게, 그리고 솔직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이다. 가면을 쓰고 있더라도, 그 선택을 내가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다면, 나는 나를 잃지 않는다.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가면을 쓰고 살아온 그 모든 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모든 가면들 아래에, 흔들리면서도 살아 있는 내가 계속 있었다는 것을.
그 모든 가면과 함께 살아가는 일
가면을 벗는다는 건, 단지 감정을 느끼는 일만은 아니었다. 그 감정들을 품은 채, 내가 만들어 낸 가면들을 가지고 다시 살아내는 일이었다.
아직 서툴고, 때로는 흔들리지만, 나는 지금 나로 존재하는 법을 천천히 배우고 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말해본다. 그 모든 가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아래에 진짜 '내'가 있다는 걸, 이제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