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날들

: 불안을 이기는 가장 단순한 방식

by 이말리
가만히 멈춰 선 어느 날,
더는 ‘해야 할 것’보다 ‘살아 있는 나’를 바라보기로 했다.
우리는 종종,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하지만 존재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있다.
단순하고도 깊은 리듬 안에서, 비로소 나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나를 지키고 있었던 건, 생각보다 단순한 ‘존재하는 힘’이었다.



요즘 나의 삶은 매우 단순하다. 생각 없이,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이고 자고 먹고 일한다. 저 머나먼 어느 지점에 목표를 찍어두고, 마치 마라토너처럼 지금 이 순간만을 살아낸다. 그저, 숨 쉬고 존재할 뿐이다.

현재에 집중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겐 불안이 사라진다. 불안과 두려움은 언제나 미래에서 끌어오는 허구의 감정이다. 평온한 현실 속에서 “두렵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미래에 가 있다.

이 감정은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도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해 관계를 힘들게 하곤 한다. 나 역시 아이를 키웠지만,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아이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한 적이 없다. 언제나 좋은 쪽으로 흘러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단순했다. 아이의 삶은 그 아이의 것이며, 나라는 사람은 그저 그 곁을 함께 걸어주는 존재라는 진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를 나와 동등한 하나의 존재, 하나의 우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아이를 품은 순간, 또 하나의 우주가 내 안에 들어오는 듯한 전율을 느꼈기 때문이다. 부모란, 내게 온 그 우주가 제 빛을 찾을 때까지 조용히 곁에서 지켜주고 보살피는 역할뿐이다. 그러니 나와는 전혀 다른 우주의 미래를 내가 어찌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통제할 마음도, 간섭할 마음도 없었다.


스토아 철학에도 이런 가르침이 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 진리를, 아이를 안는 순간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그렇다면 불안을 이기는 길은 무엇일까?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냥 해보는 것이다.
무엇이든 움직여해 보면, 안개가 걷히듯 앞이 명료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멈춰 있을 때보다 움직일 때, 길은 열린다. 예전의 나는 그 쉽고 단순한 움직임조차도 잘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한때 스스로를 ‘루틴을 못 지키는 사람’이라 여기며,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다 느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같은 일을 20년 넘게 해 왔고, 원할 때는 새벽에 일어나 한 달 넘게 시간을 지켰으며, 매주 두 번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시간을 비웠다.

결국 나는 루틴을 못 지키는 사람이 아닌, 몰입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반복을 못한 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하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저절로 움직이고 반복한다. 나는 루틴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파장에 귀 기울이며 감응이 올 때만 반응하는 리듬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다. 겉으론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존재 자체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이 단순함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지탱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꽤 괜찮다.










지금의 나는, 불필요한 생각을 흘려보낸 맑은 물처럼 단조롭다.

절벽 끝, 두려움이 밀려오던 밤에도 나는 그저 숨 쉬고, 존재했다.

단순함, 그 투명한 리듬이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 위에, 나는 매일 조금씩 더 가벼워진다.



당신의 리듬은 어떤 소리로 흐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