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닿을 수 없는 높이,
함께 오르다

기댈 수 있는 용기, 숲이 가르쳐준 삶의 방식

by 이말리
혼자가 익숙했다.
기대지 않는 것이 강하다고 믿었다.
그러다 숲을 만났다.
조용히 말을 거는 작은 생명 앞에서
나는 비로소 ‘함께’라는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20여 년 전 섬처럼 살았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세상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으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가장 강한 삶이라고 믿었다. 상처받을 일도, 실망할 일도 없는 안전한 삶. 하지만 그 안전함 속에서 점점 메말라가고 있었다.


제주에 명상 여행을 떠나면서도 내 마음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고 싶었다. 함께 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 틈에서조차 철저히 혼자였다. 한마디 말없이 혼자 걷고 혼자 먹으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다시 한번 홀로 설 힘을 기르고 싶었다.


처음 곶자왈을 걸었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화산암 사이로 자라난 나무들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숲길. 축축한 흙냄새와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스며드는 햇빛. 그 모든 것이 조용히 감싸 안아주었다.


그렇게 마냥 걷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나무에 바짝 붙어 올라가는 작은 식물을 보았다. 그것은 콩짜개 덩굴이었다. 연약해 보였지만, 나무를 꼭 붙잡고 놓지 않는 모습이 묘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작은 잎들이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 나무가 그 잎들을 받아주는 모습.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으며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그 둘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풍경.


그 순간, 참을 수 없이 복받쳐 울었다. 나도 모르게 쌓여 있던 외로움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얼마나 혼자였는지, 얼마나 외롭게 살아왔는지 그제야 실감했다. 강하다고 생각했던 모습이 사실은 두려움에 떨며 움츠러든 모습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이 사실은 믿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마음이었다는 것을.


자연은 아무 말 없이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곶자왈의 고요한 숲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내는 모든 눈물을 받아주었다.

나무와 덩굴을 다시 보았다. 덩굴은 나무에 기대고, 나무는 덩굴을 받아주고 있었다.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혼자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높이까지 함께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깨달았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결코 용기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진짜 용기라는 것을. 용기란 상처받을 수 있는 자리에 스스로를 내어놓는 것이었다. 실망할 수도, 배신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곶자왈을 떠난 후, 조금씩 변해갔다. 더 이상 홀로 남으려 하지 않았다.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주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인정하고, 남에게 기대는 것도 삶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였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숨기지 않고, 때로는 도움을 청하는 것도 괜찮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살아가니 세상이 조금씩 다르게 보였다. 혼자였을 때는 차갑고 적대적으로만 느껴졌던 세상이, 함께할 때는 따뜻하고 너그러워 보였다.

콩짜개 덩굴과 나무처럼, 누군가와 얽혀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연은 늘 그대로 있지 않았다. 계절이 변하고, 덩굴과 나무가 서로에게 자리를 내주듯 우리도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주고, 누군가의 자리에 기대며 살아간다. 때로는 누군가를 받쳐주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며. 그 균형 속에서 우리는 혼자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높이까지 함께 올라갈 수 있다. 이것이 곶자왈이 가르쳐준 공생의 리듬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곶자왈을 다녀왔다. 그 숲의 조용한 리듬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이 가르쳐준 공생의 의미를 매일의 삶 속에서 잊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때로 상처받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짜 살아있는 삶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곶자왈의 작은 식물 하나가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간다. 그 기댐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아름다워진다.


지금도 때로는 외롭고, 두렵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기댈 수 있는 용기, 그게 진짜 살아가는 힘이라는 걸.







덩굴과 나무처럼,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기대며 살아갑니다.
그 기댐 속에서 더 단단해지고, 더 높이 오를 수 있다는 걸 곶자왈이 말없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당신은 언제 ‘기댈 수 있는 용기’를 느끼셨나요?
댓글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함께 나누면 더 따뜻해질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