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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I 한국지사 도형, 민준, 그리고 키코

by 김해룡

"제가 일본에 여행을 갔다가 지하철을 타게 됐는데요, 지하철 내에서 나오는 안내방송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지금 외국인 손님이 많아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이었어요. 저처럼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들은 듣고 얼마나 놀라거나 실망했겠어요. 일본의 자국민주의와 우월주의는 본인들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어디에나 만연해 있어요. 항상 의도적이라고 말은 못 하지만요. 그 기저에는 우생학이라는 베이스가 깔려있는 거예요"


민준이 곧 무너질 것 같은 젠가 탑에서 간신히 빼낸 나무조각을 분필처럼 들고 말했다.


"야, 빨리 놔라. 이 시끄러운 것아."


도형이 민준의 머리를 쥐어박는 모션을 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니 별명이 '삐약이'인 거야. 모든 논점을 그렇게 비약 거리고 돌아다니니까 말이야. 야, 너 확증편향도 일종의 정신병이다. 알아?"


도형은 신중히 잡은 나무조각에 하중이 많은 걸 느끼고 조각을 바꿔 잡았다가 민준이랑 눈이 마주쳤고, 조용히 다시 원래 잡았던 조각으로 바꿔 잡았다.


"일본에서 일본인을 위해서 안내방송을 하는 게, 그게 너한테 욕먹을 일이냐? 이런 이기적인 새끼. 너 혹시라도 키코 씨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딱밤 한 대 맞았다."


"키코, 여기 있구요"


라고 말하며 키코가 연구실 입구로 휙 들어왔다. 도형은 흠칫 놀라서 젠가 탑을 무너뜨렸고, 키코는 문에서 자연스럽게 걸어와 얼어있는 민준의 이마에 딱밤을 톡, 하고 살며시 때렸다. 그리고는 의자 하나를 돌려 앉으며 말했다.


"자자. 우월주의, 우생학, 그런 과거의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나 앙금을 갖는 건 두 분의 자유이지만, 나는 일반화시키지 말아 주세요. 오네가이시마스"


두 손을 합장하고 입술에 올려놓은 키코는 장난스러운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노려보았다.


젠가를 주워 담던 도형도, 이마를 문지르던 민준도 키코와 눈이 마주치자 모두 두 손을 합장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민준이 갑자기 억울한 듯 말했다.


"야, 너는 제일교포잖아. 난 일본인들을 말한 거라고."


"나도 반은 일본인이에요! 엄마가 일본사람이니까."


키코는 민준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려 그 큰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도형이 민준을 변호하듯 일어서며 말했다.


"에이 너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예 한국 넘어와서 살았잖아."


"그래서, 내가 고등학교 때 한국으로 아예 넘어와서 살았다고 한국사람 취급을 받았는 줄 알아요? 나는요, 고국이란 게 없는 사람이라고. 둘이 한국사람이라고 지금 편 먹고 공격하는 거야 뭐야."


이 말을 하며 키코는 복싱 스텐스를 취했고 민준과 도형은 양손을 손바닥이 보이게 들어 올려 변명을 위한 두뇌회로를 돌렸다.


도형이 먼저 머릿속 문장이 정리가 된 듯했다.


"키코? Easy Easy~ 랩에 갔다가 한 시간도 안 돼서 온 건 공유할 사실이 있는 거 아닌가? 하하. 아직 얘기 안 한건, 재미있다는 말인 듯한데 말이야. 아닌가?"


민준이 맞장구를 쳤다.

"그, 그래! 우리는 업무에 대한 정보 공유의 의무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요, 있죠."


키코는 두 손을 천천히 내려 하얀 가운 주머니에 찔러 넣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고 말했다.


"13번 수정란, 문제가 생겼어요."


"13번이면, 연예인 윤수진 씨 난자 아냐?"


민준이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물어보았다.


"네. 맞아요. 이틀 째인데, 4세포기에서 분열이 멈춘 듯 보여요."


도형이 펄쩍 뛰었다.


"뭐?! 내일이 이식수술인데?!"


도형은 이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실험실로 뛰어갔다.


민준도 뛰어가는 도형을 보고 아연실색하여 따라서 뛰어갔고, 키코는 두 사람을 따라 천천히 실험실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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