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지 씨가 카페에 앉아있다. 오후 7시가 약속시간이었지만 20분 일찍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이런 만남을 숱하게 겪었지만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묘한 긴장감에 늘 불편해한다.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양심의 방어기제일까? 아니. 그녀에게 도덕적, 윤리적 잣대로 그녀 자신이 사는 방식에 대해 평가해 보라고 한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손가락 욕을 얻어먹을 것이다. 그녀는 그 마음을, 그 서글픈 마음의 발단이 되는 배경을 생각하지 않으려 늘 의식적으로 애를 쓴다.
그녀의 직업은 대리모 브로커. 아이를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부부들이나, 여러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임신이 불가능한 산모들을 위해 대리모를 연결해 주어서, 그들이 희망이 무너진 폐허 속에서 다시금 눈물을 닦고 일어설 수 있게 실낱보다는 조금 더 두꺼운 끈을 내미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가 삼신할매의 수행 비서즈음 되는 이 일을 하게 된 연유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순리였다. 그녀가 한때는 대리모 지원자였고,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선천성 암 환자였던 그녀의 의뢰인은 아이를 간절하게 원했고, 2천만 원 이상을 벌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에 혹해 함께 만나 갑, 을, 병 3자 간의 약정 계약서를 작성했다. 당연히 최윤지 씨가 병에 해당했다. 이 계약은 당시 일반적인 대리모 계약과는 달리 난자 매매까지 대리모에게 추가로 요구하는 계약이라서 금액이 훨씬 높았고, 그녀는 그 부분이 마음에 쏙 들었다. 몇 주 후 그녀는 난자 추출 시술을 받았고 병원에서 의뢰인 남편의 정자와 시험관 수정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그 후 평소에도 성실하지 않았던 브로커는 아예 연락을 끊어버렸고, 선 계약금과 함께 잠적해 버렸다. 그때까지 그녀가 받은 돈이라고는 난자 추출 때문에 병원을 다닐 당시 차비 명목으로 받은 60만 원 남짓이 전부였다. 합법의 테두리 밖의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탓에 그녀는 법의 보호 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과배란 주사와 여러 호르몬 주사의 부작용 증상이 완화될 때 즈음 그녀는 자신이 가야 할 노선을 확실하게 정했다.
함께 사기를 당한 부부와 몇몇 대리모들과 연락을 주고받던 중 한 가지 묘수가 쏜살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이곳(불법거래의 언더그라운드)은 암묵적인 방대한 수요량에 비해 공급은 정말이지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간절함을 이용하는 업계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합법이 아니기에 드러내 놓고 홍보를 할 수 없을뿐더러 신청인 쪽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라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루트를 선호할 것이 뻔했다. 질퍽거리는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던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이 블루오션은 자신의 더러운 삶을 씻어 낼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였다. 덜 더러운 것으로 조금 더 더러운 것을 닦는 것일 뿐. 절대적인 청결이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그녀는 두통이 좀 덜한 날 중고 서점으로 가서 웹사이트 생성에 관련된 책 중 제일 두꺼운 책을 샀고, 집에서 책을 보면서 하나하나 끼워 넣고 고치며 3일 만에 어설픈 사이트 하나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회원수가 제일 많은 출산 커뮤니티에 아무 설명도 없이 자신의 사이트로 연결되는 링크를 하나 올렸다. 그녀는 폭발적인 질문과 의뢰의 메일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파트타이머로 일하던 식당에서 앞치마를 빨다가 문득 무엇에 홀린 듯 집어던지고 나와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폰에 기척이 느껴졌다. 의뢰인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차가 좀 막혀서 5분 정도 늦을 듯해요ㅠ'
그녀는 관자놀이가 저려왔다.
'아, 누군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아나. 그럼 일찍 출발을 했어야지. 지 시간만 소중해? 상대성 이론 오지는 년이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머릿속 목소리와는 반대로 고객 우선의 마음을 담아 정중히 답장을 보낸 후, 달달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10분 정도 후 주시하고 있던 카페 문이 열렸고 윤지는 한눈에 의뢰인임을 알아차렸다.
'오케이, 저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