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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생감사 Jun 27. 2024

동료가 낸 택시비 반환받을 수 있나

의미 있는 북부법원 선례

나는 2013년 서울북부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하면서 사법행정업무와 함께 일부 항고사건을 담당하였는데, 재미있는 사건에 대하여 의미 있는 선례를 남긴 적이 있다.     


2012. 5. 4.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김 00(가명, 55)씨는 서울지하철 2호선 영등포구청역 근처에서 여의도역으로 가는 여자 승객 A 씨를 태웠다. 함께 있던 A 씨의 동료 B 씨는 A 씨를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 달라는 부탁과 함께 1만 원을 김 00 씨에게 건넸고, 김 00 씨는 이를 택시비라고 여기고 받았다. 그러나 목적지인 여의도역 도착 후 김 00 씨와 A 씨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택시미터기에 찍힌 3,200원을 보고 A 씨가 차액인 6,800원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김 00 씨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차액을 돌려주지 않은 김 00 씨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28조 제1항 위반(부당한 운임 또는 요금을 받는 행위)으로 우리 법원으로부터 2012. 9. 과태료 20만 원을 약식부과받았고 이의 신청을 했지만 2012. 11. 다시 과태료 10만 원이 정식 부과됐다.      


이에 김 00 씨는 자신은 A 씨를 목적지까지 운송해 주겠다는 여객운송계약을 B 씨와 체결했고 따라서 계약당사자가 아닌 A 씨에게 차액을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며 곧 항고했다. 김 00 씨는 위 잔액은 선지급자가 승객의 안전, 편안함, 신속성에 대한 대가로 지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도 주장하였다.     


많지는 않지만 나도 지인이 직접 택시기사에게 택시비를 교부한 택시를 타본 경험이 있다. 그런 경우 나는 목적지에서 내릴 때 대개 택시기사에게 돈이 부족하지 않느냐고 묻고는 충분하다는 대답을 듣고 내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이 돈은 내가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느 승객은 이런 경우 택시를 타고 100여 미터만 진행한 다음, 자신은 지하철을 타고 가야겠다며 차액을 돌려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택시기사로부터 들은 적도 있다.


항고심 재판장을 맡은 나는, 평소의 경험에 비추어 승객이 차액을 돌려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일반인들과 택시기사 사이에 혼선이 있으므로 법원의 명확한 기준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주심인 정 00 판사(연수원 39기)에게 사안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잘 연구하여 결정문을 작성하고 나중에는 보도자료를 만들어 공보판사에게 배부할 것을 지시하였다. 심혈을 기울여 결정문을 작성하였지만 결론은 수긍할만한데 법리적인 이론구성이 쉽지 않았고, 이에 나는 우리 법원 이 00 재판연구원(고려대 로스쿨 2기)에게 검토보고서를 작성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재판연구원의 검토보고서와 재판부 구성원과의 토론을 한 결과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여객운송계약의 일반적인 당사자는 운송을 인수하는 운송인과 운송의 위탁자로서의 여객이다. 여객 자신이 위탁자로 되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가령 부모가 여객인 자녀의 운송을 위탁하는 때에는 위탁자와 여객이 달라질 수는 있다. 우선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구성하여 운송계약의 당사자를 그 동료로 보면, 계약당사자가 아닌 승객은 잔액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게 되고, 낙약자인 택시기사는 요약자가 선지급한 금액보다 실제 요금이 더 발생한 경우에도 반대급부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수익자인 승객에게 초과요금의 지급을 청구할 권리가 인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초과 요금 상당액의 부당이득을 청구할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대법원 2002. 8. 23. 선고 99다66564,66571 판결 참조) 문제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여객운송계약의 계약당사자를 누구로 확정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로 보아, 이 사건에서 택시기사가 승객 앞에 차를 세움으로써 청약의 의사표시를 하고 승객이 탑승함으로써 승낙의 의사표시를 하여 양자 간에 운송계약이 성립한 것이고, 승객의 동료는 택시기사와 직접 운송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의사라기보다는 승객과의 친분관계에 의하여 택시요금을 대신 지급하여 주려는 의사를 가진 것으로 봄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한, 승객이 아닌 타인이 택시기사에게 미터기에 의해 실제 부과될 수 있는 요금 이상의 택시요금을 선지급하는 것은 실제 요금에 상관없이 그 전액을 지급하겠다는 의사표시를 명시적으로 하지 않은 이상, 통상 택시요금이 부족하여 승객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택시기사에게 그 잔액을 보유하게 하려는 의사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여객운송인은 승객이 운송수단을 이용하여 목적지까지 이동하게 한다는 소극적 용역의 제공에서 더 나아가 승객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운송수단을 제공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승객의 안전을 배려해야 할 보호의무를 부담하므로 시간과 거리에 따라 산정된 택시요금에는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에 대한 대가가 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지급된 택시요금의 잔액이 항고인의 주장과 같이 승객의 안전, 편안함, 신속성에 대한 대가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재판부(서울북부지법 민사1부)는 2013. 8. 13. 승객이 아닌 사람으로부터 택시비를 초과하는 돈을 미리 받았다고 하더라도 승객이 요구하면 그 차액은 돌려줘야 한다며 김 00 씨의 항고를 기각했다(2012라208). B 씨가 A 씨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달라고 한 것은 A 씨의 의사를 전달하려는 것이지 자신이 계약의 당사자로 권리·의무를 취득하려는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며 A 씨를 여객운송계약의 당사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다. 또, 김 00 씨의 주장대로라면 먼저 지급한 돈보다 실제 요금이 더 발생하면 추가 요금을 B 씨에게 청구해야 하는데 이는 B 씨의 진정한 의사나 형평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또한, "택시요금은 승객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운송해 준 대가를 모두 포함한다"며 "B 씨가 김 00 씨에게 1만 원 전부를 보수로 지급한다고 명시한 자료가 없는 이상 김 00 씨는 A 씨에게 차액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라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연합뉴스의 김 00 기자는 2013. 8. 25. 16:51경 우리 재판부의 결정 내용을 ‘동료가 대신 내준 택시비, 승객이 차액 돌려받아야’라는 제목 하에 보도하였고, 위 기사가 인터넷상에 많이 본 기사로 올라가자 잇달아 인터넷 신문이나 조간신문에 보도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원래는 중앙일보 모 기자가 먼저 보도를 하려고 했는데 편집부에서 당연한 것이라면서 보도를 하지 않아 그 기자가 항의한 일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인터넷을 유심히 보면서 재판부에 잘못이 있다는 듯한 댓글이 있지는 않나 살펴보았지만, 택시기사를 비난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고 재판부를 비난하는 댓글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고교동창 중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친구도 우리 재판부의 결정에 별다른 이의가 없었고 자신도 차액을 돌려준다고 하였다.


위 보도가 나간 후인 2013. 9. 경 나는 잠실에서 재판부 저녁회식을 마친 후 택시를 잡아 정 00 판사를 태우고 15,000원을 택시기사에게 주면서 뚝섬유원지 부근까지 잘 모시라고 하였다. 다음 날 정 00 판사는 택시기사가 잔액 7,000여 원을 돌려주길래 괜찮다고 하면서 돌려받지 않았다고 한다. 보도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상당수의 택시기사들도 승객이 잔액을 반환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도 00 기획법관(연수원 36기)으로 하여금 해당 사건기록을 인적사항을 가린 채 복사하여 두고 우리 법원에 법정방청으로 오거나 직장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고생들의 토론 및 체험 교재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고 사실관계가 복잡하지도 않은지라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근거를 대면서 열띤 토론을 벌여 나름 성과가 있다는 보고를 받기도 하였다.     


한편, 항고인 김 00 씨는 우리 재판부의 결정에 불복하여 2013. 8. 26. 대법원에 재항고(2013마1601)를 하였지만(2013. 9. 2.), 대법원도 2013. 12. 5. 심리불속행으로 기각결정(주심 양창수 대법관)을 하여 우리가 한 결정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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