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부모님께 첫 용돈을 드렸다. 현금으로 100만 원을 봉투에 담았다. 5만 원권 20장이었는데, 넣으면서 생각보다 적어 보여서 1만 원권 100장을 담을까 하다가,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아 관뒀다. '인싸'들은 쇼미더머니에서 현금총 쏘는 소품도 준비한다던데, 역시 나와는 거리 멀었다.
"취업하고 첫 명절이라 부모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다. 아무래도 현금이 제일 낫나?" 추석을 앞두고 아버지뻘인 경찰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현금과 선물 그리고 편지를 쓰라고 했다. 선물은 정관장 같은 게 무난하다고 추천했다. 사실 선물은 뭘 해도 좋아할 거라며, 손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래간만에 손편지를 써볼까 했다.
여자친구에게는 매일같이 쓰던 손편지가 왜 그렇게 안 써지던지. 그냥 단정한 봉투에 현금만 담았다.
무슨 감동적인 말 한마디 하는 성격이 못돼서, 친척들이 떠난 뒤 TV 보는 엄마 옆에 돈봉투 슬쩍 두고 내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조용히 세더니 살금살금 내방으로 찾아와 '왜 이렇게 많이 담았냐'고 했다. 그 정도는 줄 수 있다고 답했다.
한참 뒤에 엄마는 그 돈으로 내게 한약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애가 취업해서 힘들 텐데 한약 한 첩 지어주지 않고 뭐하냐고 고모가 아빠에게 핀잔을 주었단다.
나는 거절했다. 한약을 복용하면 커피, 술, 닭고기, 돼지고기, 밀가루 등 가릴게 많다. 나는 하루에도 커피를 2~3잔씩 마셔대고, 일주일에 2~3번씩 술자리를 갖고, 매일같이 닭고기·돼지고기·밀가루 음식을 섭취한다. (솔직히 그렇게 음식 가리면 한약 안 먹어도 건강할 것 같다.)
그냥 엄마 쓰라고 했다. 엄마는 안 쓸 것 같다. 제발 한약만은 지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