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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라반 Jul 19. 2017

늙은 소녀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

소녀는 늙어 늙은 소녀가 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 윤동주, 혜원출판사, 1983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슬픈데,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어린 모습을 간직한 채로 늙어가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늙어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년은 늙어 늙은 소년이 되고 소녀도 늙어 늙은 소녀가 된다. -314~315쪽 (<빛의 제국>, 김영하, 문학동네, 2010)


'이 아름다운 시집을 이벽택 군에게 드립니다.

1986년 11월 2일 누나가'


5남매 가운데 첫째인 소녀는 둘째 동생에게 윤동주의 시집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선물했다. 둘째 동생은 문학을 좋아했고, 학교에서 글쓰기로 상도 받았다. 그 소녀는 늙은 소녀가 돼 내 엄마가 되고, 시집을 선물 받은 소년은 늙은 소년이 돼 내 외삼촌이 된다. 엄마는 1970년 생이다. 1986년에 엄마는 고등학생이었다.


소녀는 늙은 소녀가 돼 어깨와 다리가 자주 아팠다. 의사는 늙은 소녀의 어깨에 석회가루가 쌓였다고 했다.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고, 다리에 못쓰는 정맥을 폐쇄하는 수술을 받았다. 늙은 소녀의 어깨의 석회가루와 다리의 폐쇄된 정맥이, 나와 내 동생을 대학으로 이끌었다.


늙은 소녀는 둘째 동생과 전화로 종종 다툰다. 몇 십만 원이 어쩌고, 돈이 있고 없고, 핸드폰 명의가 나한테 돼있으니 요금 밀리지 말라니, 큰소리가 오간다. 나와 내 동생이 노트북이나 자전거 혹은 옷을 살 때는 금액도 물어보지 않고 엄마는 신용카드를 넘긴다. 1986년 11월 2일, 문학을 좋아하던 동생에게 이 아름다운 시집을 선물하던 소녀는 늙어 내 엄마가 됐다.


늙은 소녀는 아침 8시에 직장에 나가서 밤 9시가 넘어 집에 돌아온다. 하루에 20000보를 걷고, 상자를 옮기고, 옷을 분류해 포장한다. 소녀는 예전보다 늙었다. 염색을 해도 머리가 금세 하얘진다. 앉았다 일어서면 할머니처럼 허리를 굽힌 채 움직인다.


"엄마 허리 펴고 다녀, 할머니처럼 왜 그래", 늙은 소녀는 머쓱하게 웃고 힘겹게 허리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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