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분노와 원망까지
섭취하는 육식

철학적으로 요리하고 철학적으로 먹기 - 덕제 스님 2편

by H영

자연의 기운을 섭취하는 두 방식


모든 음식의 근본은 땅이다. 그리고 햇빛과 바람에서 온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곧 대지와 햇빛과 바람의 기운을 먹는 것이다. 채식을 즐기는 사람은 식물을 통해, 육식을 즐기는 사람은 동물을 통해 그 기운을 섭취하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덕제 스님은 음식이라면 ‘다’ 좋단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내게 오는 인연들이라면 가급적 마다하지 않는다.


“먹어야 될 상황이라면 때론 육식도 마다하지 않아요. 육식은 활동성의 기운을 얻는 데는 도움이 되죠. 그렇다고 해서 육식을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덩치 큰 코끼리나 소를 보세요. 그들이 육식을 하던가요? 풀만 먹고도 힘이 천하장사잖아요.”


결국 습관의 문제다. 대다수의 인간들이 채식만으로 기운을 섭취하는 데 단련되지 못한 것뿐이다. 그래서 육식을 하던 사람이 한동안 고기를 먹지 않으면 병이 생기기도 한다. 때론 육식이 약으로서 절실히 필요한 상황도 있다. 채식과 육식은 자연의 기운을 어떻게 섭취하느냐의 방법적 차이이다.


“한국 불교에서는 육식을 금하지만, 티베트나 태국 등의 불교국가에서는 스님들도 육식을 하죠. 부처님도 고기를 드셨다죠. 부처님이 마지막에 드신 음식이 뭐였는지 아세요? 돼지고기와 버섯이었어요. 부처님은 그 음식을 먹고 돌아가셨는데, 고기와 버섯이 상해있었던 거예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드셨죠. 그걸 먹고 떠나야 될 걸 아신 거예요. 그래서 이 음식은 나만 먹을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먹지 말라고 당부하고 혼자만 드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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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생전의 불가에서도 육식을 했다고 한다. 단 몇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자신이 직접 잡은 고기나 남이 자기를 위해 잡은 고기, 내가 남을 시켜 잡은 고기 등은 먹을 수 없었다. 죽은 지 3일이 지나지 않은 고기도 먹어서는 안 되었다. 이 같은 경우들을 제외하면 육식도 허용되었다.


그러나 육식은 내 몸을 타의의 활동성으로 움직이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육식은 동물이 지닌 활동의 기운을 섭취하는 것이라, 우리 몸에 들어갔을 때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나는 가만히 있고자 하지만 육의 움직이는 업장이 내 마음을 자꾸 움직이게 만든다. 또한 육식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분노, 원망의 기운을 섭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화가 잠깐만 일어나도 몸에 기운이 들어가면서 성질이 나지 않던가. 하물며 타인에 의해 죽음을 당할 때 그 분노와 원망의 기운은 어찌 되겠는가. 결국 육식은 살덩어리에 고스란히 배인 그 기운들까지 섭취하는 것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는 참선에 그러한 기운이 이로울 리는 없죠. 그건 안 먹어봐야 알 수 있는데, 한동안 육식을 금하다 어느 날 한번 먹어보세요. 그러면 그 느낌을 확연히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스님들은 가급적 육식을 자제하려는 것이고, 외부의 시각도 스님들은 육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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