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 존재들과 인연에 대한 도리

철학적으로 요리하고 철학적으로 먹기 - 덕제 스님 1편

by H영
만물은 윤회한다. 그리고 존재한다. 인간은 물론 작은 나무, 풀 한 포기도 존재하고자 하는 기운을 갖는다. 그것들은 한편 제각각의 자리에서 존재의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작은 미물조차 우주와도 같은 존재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물 한 모금, 밥알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다.



모진 시련을 겪고 내게 온 밥알 한 알의 기적


불법은 쉽다. 모든 만물의 존재가 이미 불법이기 때문이다. 작은 나무 한 그루만 ‘찬찬히’ 보아도 알 수 있다. 싹을 틔우고 자라서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다시 흙이 된다. 그렇게 돌고 돌아 나무는 존재의 윤회를 거듭한다. 그 이치가 어디 나무뿐이랴. 인간의 존재, 물의 존재, 풀 한 포기의 존재,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 그러한 자연의 이치가 곧 불법인 것이다.


“밥알 하나만 해도 그래요. 고 작은놈도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는지 한번 따져볼까요? 우선 모판에 씨가 뿌려지고 싹을 틔우고 자라 모종이 되면 모내기를 할 때 어떤가요? 함께 자란 형제들과 뿔뿔이 흩어지겠죠. 분리의 고통을 겪고 물이 흥건한 땅속에 푹푹 박힌단 말이에요. 그런 후엔 독한 농약과 병충해를 견뎌내야 하고, 때론 가뭄이나 물난리도 겪죠. 그렇게 햇빛 아래에서 어느 정도 영글어 고개를 내미나 싶으면 새들이 와서 쪼아 먹기도 하죠. 그것까지 잘 모면하고 살아남아서 이젠 좀 편해지나 싶으면 밑동이 싹둑싹둑 잘린단 말이에요. 어디 밑동뿐인가요, 목도 댕강 잘려 뜨거운 태양 아래 말려지고 껍질이 벗겨져 그렇게 쌀이 되잖아요.”


온갖 시련을 겪어낸 쌀이 밥이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고비를 넘겨야 한다. 물속에 들어가 온몸이 부서지도록 빡빡 씻기면 이젠 뜨거운 밥솥행이다. 그 많은 고난의 과정을 겪고 ‘밥’이라는 존재가 되어 밥상에 올려진다 해서 시련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수저에 몸을 실어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칫 밥상 옆이나 바닥에 톡 떨어진다고 치자. 그 한 알의 귀함을 아는 인간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은 더럽게 여겨 버리기 십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밥풀떼기는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그래도 그놈은 덜 억울한 놈이라, 그보다 더 억울한 놈은 어떤 줄 아세요? 입까지 무사히 들어갔는데 이놈의 칠칠치 못한 인간이 밥을 먹으면서 말하는 바람에 입 밖으로 툭 튀어나간단 말이죠. 얼마나 분하겠어요. 그 많은 고통과 귀한 죽음이 헛되이 사라지니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질 일이죠. 뷔페문화는 불교의 발우공양이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음식을 버리지 말라는 거예요. 존재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거죠."


밥 한 그릇을 먹는 일도 알고 보면 수많은 인연 하나하나를 먹는 일이다. 밥알 하나도 그러할 진데, 끊임없이 변화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어떠하겠는가. 그 존재 자체로도 실은 기적이고 진리고 법이다. 그러니 밥을 먹을 때는 한 알 한 알을, 물을 마실 때는 한 모금 한 모금을 흘리지 않고 조심히 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존재들에 대한 예우요, 모진 시련을 겪고 내게 온 수많은 인연들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각자의 존재들이 충실히 그 소임을 이행하고 윤회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사람의 기본 도리요, 수행의 기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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