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으로 요리하고 철학적으로 먹기 - 영만 스님 1편
평온함과 안온함이 태안太安과도 같은 절, 태안사. 그곳에는 스님들을 자식처럼 섬긴 일명 '조몰락 공양주’로 통하는 보살님이 있었다. '오늘 반찬은 무엇으로 할꼬?'라는 걱정을 일생일대의 화두로 잡고 끼니마다 모정의 음식을 지어내던 조몰락 보살님. 음식에 담긴 그 마음이야말로 태안의 경지였다.
‘스님들의 어머니’ 노보살님의 평생 화두
전남 곡성의 동리산에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절이 있다. ‘크게 편안하다’하여 이름 지어진 태안사. 마음을 씻으라는 ‘정심교情心橋’와 지혜를 얻어가라는 ‘반야교般若橋’, 도를 이루기 전엔 속세로 돌아오지 말라는 ‘해탈교解脫橋’. 각각의 이야기가 담긴 다리를 지나 천년의 세월을 장구히 이어온 정자 모양의 다리 ‘능파각凌波閣’까지 건너노라면 어느새 속세의 번민은 티끌과도 같아진다.
그 다리들을 건너 청설모가 한 자락 내어준 일주문 앞 계단을 올라 절 앞에 이르면 부처님 사리탑을 모신 커다란 연못에 다다른다. 공양 후에나 이른 새벽녘에나 달빛 비추는 달밤에도 더없이 좋은 수행처였던 그곳을 여유롭게 포행하는 일만으로도 신심은 절로 일고 수행이 따로 없었다. 다리를 건너면서, 연못을 돌면서, 댓잎이 바람에 스치는 대숲사잇길을 거닐면서, 태안사는 온통 ‘불고불락’의 포행길 천지였다.
‘크게 편안하다’하여 이름 지어진 태안사에는 말 그대로 ‘태안’과도 같은 음식을 지어내는 공양주 보살님이 살았다. 잠깐 조몰락거리는 듯싶으면 반찬 서너 가지쯤은 우습게 만들어낸다 하여 일명 ‘조몰락 보살님’으로 통하기도 했던 노보살님. 하지만 ‘우습게’ 음식을 만들어내기까지는 그 얼마나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으랴.
“보살님이 하신 얘기가 기억나요. 속가 음식이야 고기나 생선 같은 재료를 사용할 수도 있고 양념도 이것저것 넣을 수 있는데, 절에서는 온갖 풀만 갖고 궁리해야 하니 더욱 고민이 된다는 거였죠. 그래서 스님들이 도량석(새벽 예불을 알리기 위해 목탁을 치고 염불 하면서 절을 도는 의식)을 돌 때면 일어나 앉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반찬 화두’를 잡는 일이라고 했어요. 불가에서는 ‘이 뭣꼬?’라는 대표적인 화두가 있는데, 보살님의 평생 화두는 ‘오늘 반찬은 무엇으로 할꼬?’였던 거예요.”
태안사에서 청화 큰스님의 제자로 출가한 영만 스님에게 그 시절 인연으로 만난 공양주 보살님에 대한 기억은 스승의 기억만큼이나 남다르다.
당시 태안사는 스님들이 정진하는 선방은 물론 일반인들이 공부하는 시민 선방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대중의 숫자만도 만만치 않지만, 공부하느라 예민해진 선방 식구들 개개인의 식성과 입맛을 맞추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식단에 적절한 변화를 줄 줄도 알아야 하거니와, 음식이 몸에 부대끼는 일이 없도록 맛이나 영양 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워야 했다.
그만큼 까다로운 것이 선방음식인데, 조몰락 보살님의 음식은 단 한 명도 토를 다는 일이 없었다. 남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건만 대부분의 스님들이 ‘태안사표 호텔음식’이라며 입을 모아 칭송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