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해야 입을 수 있는
옷, 론지

나의 반려사물 이야기 - 2

by H영

여행을 즐기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 나라 사람들이 평소 즐겨 먹는 음식을 먹고 그들이 기거하는 곳에서 잠을 자보는 것. 거기에 현지의 옷을 구입해 입고 지내다 보면 낯선 문화에 쉽게 적응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그 나라의 일반적인 의식주를 체험해 보는 것인데, 그중 옷이 주는 친화력은 음식 이상으로 효과적이다. 더구나 그 옷에 일상화된 전통이 녹아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옷을 입고 현지인처럼 생활해 보는 체험이야말로 여행다운 여행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얀마 여행은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얀마를 여행하는 내내 계속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미얀마 사람들 누구나 입고 다니는 이상한 옷이었다.‘론지(longy)’라고 하는 그 옷은 원통형의 천을 치마처럼 둘러 입는 미얀마 전통 의상인데, 어디를 가나 남녀노소 불문하고 입고 다녔다. 미얀마에도 제대로 옷모양새를 갖춘 다른 전통 의상이 있긴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론지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널따란 천 한 장이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전 국민이 다방면으로 즐겨 입는 전통 의상이 될 수 있다는 점과 그 단순한 옷이 지닌 실용성과 합리성, 평등성 그리고 나름의 멋스러움에 반해서였다.


론지는 허리 치수 상관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고, 통풍이 잘 되며, 잘 마르는 편리한 옷이었다. 게다가 색만 통일하면 교복이나 단체복으로도 활용 가능했다.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입은 초록색 론지의 물결을 목격하면서부터 그것을 입고 다니고 싶은 바람까지 생겼다. 그러나 외국인이 론지에 도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허리를 단단히 여미는 법을 익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능숙한 기술과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 론지의 양끝을 포개어 단단히 감은 후 허리춤 속으로 집어넣어야 하는데, 고무줄이 있거나 벨트를 착용하는 게 아니어서 제아무리 단단히 여며도 느슨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여밈 상태를 체크하지 않았다가는 자칫 망신을 당할 수 있다.


론지는 속옷을 입지 않고 착용하는 게 원칙이라는 얘기도 있어서 여밈을 게을리했다가는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의 옷차림이 일상화된 미얀마 사람들에게 그러한 불편함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점잖은 색상의 론지에 흰색 와이셔츠를 차려입은 선원 내 요기(yogi 요가수행자)들의 옷차림에선 양복 이상의 중후한 격조와 신사다움이 묻어날 뿐 아니라 전통을 중시하고 그것을 이어가는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미얀마 여행에서 구한 론지 몇 장을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중 가장 아끼는 론지는 같은 숙소에서 생활한 요기, 니이에게 받은 것이다. 여행이 끝나갈 즈음 가난한 그녀가 내게 줄 수 있는 선물은 고작해야 자신이 입고 다니던 론지였지만 내겐 얼마나 감격스러운 선물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분명 내가 탐내던 것이었는데, 어디지 모르게 다른 모양새로 변해 있었다.


“네가 입기 편하도록 허리를 개량해서 수선한 거야. 이젠 안심하고 입을 수 있겠지?”(웃음)


미얀마의 전통과 자부심이 살아 있는 론지. 그러나 여밈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는 부지런함과 야무진 손놀림이 부족할 시엔 큰 망신을 각오해야 하는, 까다로운 만큼 매력적인 이 옷을 안심하고 입을 수 있도록 개량해 준 니이의 배려와 노고에 새삼 마음이 따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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