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비도 오고, 땅도 흔들리고, 말도 안 통하고

by 구하늘

태어나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고 혼자 집을 나섰다. 입국 카드 작성하는 방법부터 세관 신고까지 모든 것이 처음이라 기대만큼 불안한 마음이 컸다.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한국을 벗어나 하네다공항에 도착했다.


처음의 그 설렘과 두근거림은 곧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입국 심사’라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미리 찾아본 바로는 대부분 별일 없이 지나간다 했는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공항 직원이 안경을 치켜세우며 뭐라뭐라 말을 걸어왔다. 마스크를 거쳐 나온 소리는 얼핏 옹알이처럼 들렸다.


그동안 들으며 공부해왔던 NHK 뉴스와는 너무 달랐다.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어ㅠㅠ'


머릿속이 온통 새하얘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평상시에 아나운서처럼 말하는 사람은 없을텐데말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멍청한 눈으로 쳐다보고있었더니 무해함이 전달되었는지 여권에 입국 허가 도장을 찍어주었다. 겨우 짐 검사까지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아직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진이 다 빠진 기분이었다.


'또 누군가와 말을 섞어야 할 일이 있을까?'

여행 시작부터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지친 마음을 이끌고 숙소를 찾으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문제에 맞닥뜨렸다. 당연히 도쿄에 있을 줄 알고 예약했던 호텔이 알고 보니 요코하마에 있었던 것.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 놀러 와놓고 숙소를 인천으로 잡은 셈이다. 1시간을 헤맨 끝에 겨우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려고 여권을 내밀었다. 직원이 뭐라뭐라 설명해주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왠지 기본적인 안내사항 같아서 그냥 "하이, 하이" 대답했더니 다행히 방 열쇠를 받을 수 있었다.


비록 1인실이었지만 방은 정말 좁았다. 침대 옆에는 거울이 달린 작은 책상이 있었고, 바닥에 캐리어를 하나 펼치니 방이 꽉 차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진짜 일본에 왔구나.'


마음이 놓이자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첫날은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고 내일부터는 여유롭게 돌아다니려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있었다. 단순한 장맛비인 줄 알았는데 태풍이었다. 전날 편의점에서 사온 빵과 우유를 먹으며 태풍 관련 뉴스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외출을 결심했지만 우산이 없었다. 호텔 로비에서 나갈 타이밍을 엿보며 밖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직원이 눈치를 챘는지 우산 하나를 건네줬다. 정말 아리가또고자이마스. 밖을 나서자마자 세차게 쏟아지는 비에 신발은 금세 침수되었다. 걸을 때마다 양말이 질퍽거렸지만 현지에서 신발을 살 정도의 용기는 없었다. 물기에 젖어 팅팅 불어가는 발로 신주쿠, 시부야, 하라주쿠 등 도쿄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굉음과 함께 침대가 흔들려 눈이 떠졌다.


‘뭐지?’

지진이 자주 난다고는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바로 겪게 될 줄이야. TV를 켜보니 도쿄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다리가 무너진 곳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있었다. 태풍에 이어 지진이라니. 호텔에서는 별다른 안내 방송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오전에는 방에 머무르며 뉴스를 지켜보다가,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다시 밖으로 나섰다. 거리에 나와 보니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슬그머니 그 무리에 섞여들어가 남은 여행을 이어갔다.


그렇게 나의 첫 일본 여행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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