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온 뒤, 일본어를 더 이해하고 싶고 말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하지만 수능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럼에도 수업은 늘 뒷전이었고,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일본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현실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유학이나 워홀 정도였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장 일을 시작해 워홀 자금을 모으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계획이라기보다는 고집에 가까운 결정이지만, 당시에는 그게 옳다고 믿었고 모든 게 계획대로 될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엄마는 반대, 반대, 절대 반대였다. 나는 나대로 고집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타협점을 찾았다. 4년제 대학 대신 짧게 다니고 바로 사회에 나갈 수 있는 전문대를 선택한 것이다. 컴퓨터를 좋아했기에 소프트웨어 공학과에 진학했고, 동시에 알바 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전단지 붙이기, 아이스크림 가게, 전자제품 매장, 인형탈 알바까지. 여기저기 지원서를 내고 면접도 보러 다녔지만 뽑아주는 곳은 없었다. 세상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그때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 무렵 유학 시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성적이 좋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집안 형편상 장학금 없이 유학은 어렵기에, 약 1년 동안 준비에 매달렸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일어 공부에 집중하느라 정작 시험에 필요한 화학 과목을 소홀히 한 탓이었다. '덕분에'라는 표현은 좀 이상하지만, 덕분에 일어 실력만큼은 분명히 향상되었다. 두툼한 일한 사전을 책처럼 수십 번 넘겨가며 보기도 했고, 일본 드라마와 뉴스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듣고 따라 하다 보니, 일상 회화정도는 어느새 가능해졌다.
그러던 중 군 입대 시기가 다가왔다. 5월에 입대가 확정되었고, 학교는 휴학을 신청했다.
그 즈음, 예상치 못한 연락이 왔다.
“너 일어 좀 하지? 통역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