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가나부터 공부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그 뒤로 벌써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다른 나라 언어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다. 그래서 정말 우직하게, 무식하게 단어를 외웠다. 수많은 단어를 접할수록 이따금씩 드는 생각이 있었다.
"단어는 무한한건가..."
"이런 표현은 한국어로도 써본 적이 없는데 외운다고 과연 도움이 될까...?"
아무리 외워도 책을 덮는 순간 절반은 잊혀졌고, 샤워를 하는 동안 또 절반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때부터 개인 블로그를 만들고 NHK 뉴스 기사를 매일 1건씩 번역해 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있는 표현이 기사에 보이면 '실제로 이렇게 쓰이는구나.'싶은 반가움이 있었고, 처음 보는 단어를 만나면 숨겨진 지식을 하나 발견했다는 기쁨도 있었다.
"너 일어 좀 하지? 통역해볼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내내 같은 반이었고 그만큼 가까운 사이였기에 내가 일어 공부하는 걸 늘 지켜봐온 친구였다. 근데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국내의 한 회사에서 일본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어 곤란한 상황이라고 했다. 통역사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이공계 지식이 부족해 적합한 인력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친구의 가족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졌고, 친구가 내 블로그를 보여줬더니 회사 측에서 나에게 한번 연락해보고 싶다고 한 것이었다.
설렘보다는 부담감이 컸다. 그동안 유학 공부도 하고 혼자 일본을 몇 번 다녀온 경험은 있었지만 '보수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회사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절했다.
"통역 업무를 맡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블로그에 번역하신 글도 봤어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냥 간단한 말만 전달해주시면 되고, 통역에 필요한 자료도 미리 드릴 거라 어렵지 않을 거예요~"
자료만 미리 받아볼 수 있다면 그리 어렵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덜컥 수락해버렸다.
통역 제의가 들어온 건 4월 16일 저녁이었다.
"그런데 출국은 언제예요?"
"내일모레요!"
...
????????????????????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