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오르는 청설모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가지 끝에 흔들흔들 매달린 모습은 줄 타는 광대처럼 위태롭다. 숲이라면 떨어져도 다치지 않겠지만, 차가 지나는 길 위라 위험하다. 꽃 필 때가 아니면 도심지의 나무는 거기 있으나 없으나였다. 사람들이 살펴보지 않으니 청설모가 찾아 챙겨주네. 차 안에서 커피 주문도 잊고 청설모가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주문을 걸었다. 앞 발을 부지런히 비벼 입에 갖다 댈 먹이가 있어 다행이라 여길 때, 그 뒤로 허연 것이 어름어름 겹쳐 보였다. 들판에 휘날리는 제초 비닐과 같은 버려진 비닐봉지이려니 할 때, 청설모 꼬리와 겹쳐 보이는 것은 분명 살아있는 새였다. 이렇게 가까이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 후로 그들은 남이 아니다. 허공을 나는 그들이 보이면 멈춰 서서 쳐다보게 된다. 서로 겹치지 않고 왔다 가는 하늘길이 있다. 아마 물가인 듯하다. 안성천에도 가고 통복천에도 갔을 것이다. 그들이 내려앉은 모습을 보며 가끔 아침 뜀박질을 했다. 물 위로 긴 날개를 펴서 내려앉을 때, 물결을 거슬러 무늬를 펼치는 그들의 힘에 압도된다. “아줌마가 달리니 반가워서 백로도 날아주네.”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으려 귀마개를 끼고 달렸지만, 다정하게 말 거는 할아버지에게 무장해제 당한다. “멋져요. 이렇게 가깝게 본 적이 없어요.”로 대화를 나눈다.
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사라질 때쯤 그들은 빈 둥지만 남겨놓고 사라졌다. 사라진 후에야 그리웠다. 잎을 떨군 신갈나무에서 그들의 둥지를 보며 기다렸다. 높은 가지마다 매달린 그들의 빈 집을 헤아리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랐다. 언제 오는 지를 챙겨보리라 마음먹었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그들을 갑자기 만나곤 했다. 가로수의 벚꽃과 이팝나무 꽃들이 흩날리며 사라지면 햇볕이 뜨거웠다. 뜨거운 해를 피하려 그늘을 찾을 때, 아무도 돌보지 않는 키 높은 신갈나무의 빈집에 주인들이 돌아왔다. 반가웠다.
새는 거리를 두고 봐야 한다. 자동차의 불빛도 소음도 살짝 비낀 이곳은 평택시에서 1972년에 공원부지로 정해 놓고 짓지 않았기에 그들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었다. 30년이 넘은 아파트들 옆 큰길 너머에 새 아파트 단지가 생기며 그들의 허공 세상이 위태롭게 잘려나갔다. 새 아파트 단지는 그들이 사는 곳과 너무 가까이에 지어졌다. 안타깝다. 새로 지어질 은실공원부지에 그들의 보금자리도 있다고 했다. 새둥지를 옮겨주는 이삿짐센터는 보이지 않고 나무만 몇 해를 두고 잘려나갔다. 이렇게 사라진 보금자리가 평택에서는 여러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