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문제의 비밀

교단일기- 시험 문제의 비밀

by 뚜벅뚜벅

​​ “샘! 저 이번 국어 시험은 무조건 100점 받아야 해요. 1등급이 되어야 특목고 가요. 초등학교 때부터 가고 싶었던 학교예요. 거길 가야 꿈을 이룰 수 있어요. 수행평가는 다 만점 받았어요. 그러니 기말시험만 만점 받으면 돼요. 송지영(가명) 샘처럼 분명하게 내세요. 샘은 너무 까다로워요. 다른 선생님들처럼 한쪽 눈 감고 내세요.” 기말시험이 다가와 인터넷에서 찾은 문제에 대한 질문을 설명해 주다 듣게 된 재욱이(가명)의 불만에 최지우(가명) 선생은 아무 말 못 했다. 재욱이가 그 고등학교에 원서를 내기 위해 국어, 영어, 수학만 1등급 받으면 되는데, 1학기 중간고사의 문제 중에서 자신이 낸 문제를 틀려서 위태롭게 되었다며 울먹거리며 쏟아놓는 말이 최지우 선생은 불편하다.

시험지 검토를 위한 교과협의회는 끝나고도 뒷말이 많다. 시험 문제에 대한 품평회를 따로 몇몇이 모여 서로 공유하는 선생들끼리는 우월한 집단이라도 된 듯이 다른 선생을 무시했다. 이런 뒷소문이 떠도는 것을 눈치챘기에 처음부터 문젯거리로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고, 두려운 만큼 상대 문제의 결점을 잡으려 살펴보느라 첫 말을 아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시험지 편집에 대한 말로 시작했다. 시험지가 5장이면 학생들이 시험 시간 안에 다 풀 수 있겠냐는 말이 나오니, 가독성이 떨어지는 자간과 장평의 편집이라는 말도 덧붙었다.

“시험지 편집의 가독성은 누가 판단하는 것입니까? 연구부가 정한 자간과 장평의 값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입니까? 출제자가 바탕 글과 선택지의 문장이 이어지도록 줄이거나 늘이는 것이 오히려 가독성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가독성은 읽기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지 단순히 규칙을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청 평가위원인 연구부장 선생의 못마땅한 표정을 봤지만, 참지 못하고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들어 동료가 낸 문제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이 예의가 아닙니까? “라는 날이 선 최지우 선생의 말은 아무도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 버렸다. 협의 초반에 공격 대상이 된 문제만 문젯거리가 되어 시간을 끌다가 매번 그랬듯이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같은 학년 선생끼리 마무리하자며 흩어졌다.

시험지 편집은 최지우 선생이 연구부의 틀을 받아들이면서 일단락되었다. 문제의 내용이 더 중요하니 혼자 기운을 뺄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번엔 같은 학년 선생이 최지우 선생의 문제를 답이 더 드러나도록 바꾸자는 의견이었다.

“한 반에 100점이 5명 정도는 나와야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어요. 불편해도 선생님의 3문제를 수정했으면 좋겠어요. 전교 30등까지 100점을 맞으면 학생이나 학부모도 항의하지 않아요. 자기가 100점 맞으면 오답도 정답이 되는 세상이니까요.”

옆에 있던 또 다른 선생은 최지우 선생이 별말을 하지 않으니 용기를 얻어, 평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까다로운 지문을 수업하고, 참고서에 나오지 않는 바탕 글로 문제를 내서 학생들이 어려워했어요. 덩달아 전 항상 불안했어요. 그냥 교과서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프린트 범위에서 수업하고 시험 문제 냈으면 좋겠어요.“

“한 달여 시간 동안 공들여 수업한 내용이 문제집에 없다고 시험 문제로 안 내면, 무얼 시험 문제로 냅니까?라는 최지우 선생의 대답에 같은 학년 수업을 하는 선생 둘은 ”저희들은 학부모 민원에 대답할 용기가 선생님처럼 없어요. “라는 대답이었다. ”그래도 다시 문제를 다듬어 보겠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내주세요. “라고 포기하지 않고 최지우 선생은 다른 두 선생에게 부탁했다.

시험이 다가오니 자습시간이 늘어났지만 학습은 더 안 되는 학생들은 학원에서 정리해 준 인쇄물은 간신히 보고 있지만,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과 함께 한 교과서와 인쇄물은 무시하고 학원에서 정리해 준 인쇄물만 간신히 보고 있다. 그러다 자습시간에 들어온 선생님들의 비위를 맞춰 시험 힌트 하나라도 더 들어볼 잔머리를 돌리던 희진(가명) 이는 최지우 선생에게 말을 건다.

“샘 문제는 넘 어려워요.”

“시험 문제 쉽게 내는 것이 쉽겠니? 어렵게 내는 것이 쉽겠니?”

“쉽게 내는 것이 쉽겠죠. 그런데 샘은 왜 힘들게 어렵게 내요?”

“선생이 학생을 생각하는 모습은 사탕을 주는 것도 아니고, 공허한 칭찬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야. 난 수업으로 너희들을 만나는 사람이니 최선을 다해 수업하고, 그 내용을 시험으로도 내야지. 그런 시험이니 적어도 너희들이 시험문제를 푸는 시간 동안이라도 풀어볼 만한 문제를 내야겠지. 그래서 이번 시험에서도 3문제는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선물이야, 부족하지만. 시험 치고 나서 내 선물을 잘 받았는지 말해줘.”

“샘은 선물이라고 줬는데 제가 틀리면 어떻게 해요. ”

“선물은 받은 사람이 알아줘야 선물이잖아.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아. 알아주기만 하면 돼. 10년, 20년이 지나 봐, 이따위 학교 시험은 다 잊혀. 100점과 80점의 차이도 없어. 그래도 학생과 선생이 마음을 나눴다는 기억은 남지 않을까?”

“힘들어도 선생님의 선물을 잘 읽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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