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놓친 아이들

by 뚜벅뚜벅

고집불통 여교사의 일기 –손 놓친 아이들

교무실에서 혼자 누리는 고요가 학교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고 그 시간이 있어야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어, 출근 시간은 남들보다 1시간 정도는 빨랐다. 그날도 수업 공책의 진도를 확인하며 나눠줄 유인물을 챙긴 후, 선생님들께 보내야 하는 업무 쪽지를 쓰고 있다가 학교를 같이 옮긴 박 선생님의 방문으로 나의 고요는 깨졌다.

“선생님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니, 일단 안심하세요. 지금 학교도 아니고, 예전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그런데 엄청 무지 놀라운 일이니까, 마음의 준비는 하세요. 그래도 선생님과 관련된 일이 아니니까, 걱정은 하지 마세요. 굉장히 슬픈 일이에요. 일단 옆에 가서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어요. 놀라지 마세요. 아니지 이건 엄청 놀라운 일이에요. 에이,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할게요. 샘이 챙겼고, 윤정샘이 담임했던 경근이가 자살했어요. 어제. 중간고사 수학 시험지를 찢고 신던 신발은 곱게 벗어놓고 맨발로 자전거를 끌고 나가던 모습이 학교 CCTV에 마지막으로 찍혔다고 하네요. 에휴.”

그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다. 같은 반의 마음 약하고 말을 더듬던 성현이의 아픔을 제일 먼저 눈치채고 담임에게 보호를 요청했었고, 발표 수업에서 바보 표정을 연기하며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어 까탈스럽던 사춘기 학생들을 웃게 만들던 용기 있던 아이였다. 남들이 꺼리는 젖은 쓰레기도 손으로 덥석 잡아 버리며 깔끔한 체하던 아이들의 위선을 비웃던 아이였다. 무엇보다 이런 일들 때문에만 기억하는 아이가 아니다. 하고 싶은 꿈이 있던 아이였기에 희망의 끈을 놓칠 까닭이 없다고 나는 믿었었다. 이런 나를 비웃듯이 박 선생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중3이 되어 진로 때문에 무척 힘겨워했다고 하네요.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가 자기는 재능이 부족한 것 같다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도 여러 가지를 고민하며 무척 압박을 받았다고 해요. 학교 폭력은 아니라고 유서에도 썼다네요. 자기를 챙겨준 친구들, 고마운 선생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쓴 후에 다른 사람들을 절대 원망하지 말라고도 썼다네요. 세상에”

뭉툭한 연필을 고집하며 지우개로 벅벅 지우다가 수행평가 종이를 찢어서 또 줄 수 없냐던 그 아이에게 차갑게 거절한 후, 뒷장에 테이프로 시험지를 붙여주며 짜증을 냈던 학생이었다. 코를 후비다가 더벅머리를 벅벅 긁으며 과제를 제시간에 해내지 못해서 쉬는 시간까지 자주 기다려줘야 했지만, 그 아이가 쓴 표현은 남달랐다. 자기가 떠올린 자기만의 단어와 문장이었고 자기 고민이 담긴 깊이 있는 글이었다. 지저분하게 지운 흔적까지도 고민이 담겨있었다. 너는 작가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말에 흐뭇해서 코를 벌렁거렸던 아이였다. 이렇게 느리고 남들과 다른 아이는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쉬운데, 그 아이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반장 선거에 나가서 과거 코미디언 같은 말투와 춤으로 인기를 얻어서 부반장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 그 아이에게 샤프를 선물해 주며 부러진 연필을 고집하지 말고 이젠 샤프로 깔끔하게 쓰라고 어설픈 충고 했었고, 그 아이는 샤프심을 교환하는 것도 어려웠는지 몇 번 쓰다가 잃어버렸다며 미안해했었다.

30년 전의 효원이도 남다르게 따뜻하고 눈빛이 부드러운 아이였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모인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수학과 영어를 곧잘 하여서 햇병아리 선생인 내 눈에는 아까워 보이는 아이였다. 엄마와 살던 그 아이에게 고향인 제주도로 데려가 본격적으로 대학입시를 준비시키고 싶다던 아버지의 바람을 나는 적극 지원했다. 효원이가 가람이와 가족처럼 따뜻하게 여기서 지내고 싶다던 애원을 언제까지 우물 안의 개구리로 지낼 거냐며 매몰차게 거절하며 전학을 보냈다.

갔던 그 아이가 다시 돌아오고 싶다던 연락도 그럴 리가 없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성적으로만 판단하던 어리석은 선생도 선생이라고 그 아이는 더 이상 애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역시 좋은 학교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잘 적응하고 있으려니 했었다. 제주도가 아니라 다시 이 학교 근처의 시내에서 학교에 가지 못한 그 아이를 발견하고 미안해서 그 자리를 피했다. 그 후로 나는 좋은 선생은 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옹졸한 내 눈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너희들의 따스함과 작은 떨림을 알아차리지 못한 둔한 선생이라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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