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이나 시간을 줬으면 됐지. 그냥 뭉개려 하네요. 교육청에 다시 연락할까요? 이번엔 바로 합니다. 안 참아요.”
2학년 6반 수업을 한 후 복도에서 준호와 마주쳤다. 키가 작고 왜소하지만 매서운 눈빛에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부드럽고 차분하게 말했다. 가슴이 조여 오는 협박이다. 1학기의 질병 휴직을 끝내고 복직하니, 2학년 6반부터 10반까지 20시간의 수업을 맡았다. 그중에서 2학년 8반 수업은 시작부터 힘겨웠다. 1/2은 교과서가 없고 고정된 자리는 없이 끼리끼리 앉아서, 선생 너는 대충 때우고 가라는 식이었다. 그 반에서 수업하기 위해서는 눈도 감고 귀도 닫고 했지만, 한숨과 절망이 쌓여 적응할 수 없었다. 해결하지 않고는 학교에 다닐 수가 없기에, 5분 일찍 교실에 들어가서 교탁 옆에 앉아 책을 펼쳐놓고 수업 종이 치면 바로 수업을 시작하는 기선제압의 방법을 떠올렸다. 백 마디 말보다 선생의 규칙적인 행동에 학생들은 반응했기에, 수업이 꼬일 때 스스로 집중하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쉬는 시간은 우리들의 권리인데 왜 침범해요?”
“쉬는 시간을 빼앗는 것은 아니다. 밀도 있는 수업을 위해 미리 와서 준비하는 것이다. 너희들을 방해하지 않겠다. 교탁 옆에서 책만 보고 있겠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질문할 것이 있으면 나오면 된다. ”
“체육 수업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체육복을 갈아입으려 한다. 나가주세요.”
“시간표를 보니 체육은 국어 수업 다음다음 시간이다. 바로 이어지는 시간은 국어 수업이다. 그래도 꼭 갈아입고 싶으면 교실 뒤편이나 화장실에서 갈아입어라, 나는 교탁 옆에서 책만 보고 있겠다. ”
화가 나면 꼬이던 설명도 꼬이지 않고, 준비한 수업 내용을 무사히 끊김이 없이 하고 나왔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과 눈까지 마주치며 여유가 있게 수업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수업이 제자리를 찾고 있다고 믿었다.
다음 날 출근하여 조회를 다녀오니, 인터폰이 울린다. 교감 선생님이다. 공강 시간에 잠시 오라고 한다. 복직한 지 한 달 도 안 된 나를 찾을 일은 없을 텐데. 교감 선생님이 담임인 나를 찾는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조이는 마음으로 정신없이 수업하고 교감 선생님을 찾았다.
“2학년의 이준호라는 학생을 아시죠?”
“자신의 실명까지 밝히며 교육청 게시판에 항의했어요. 체육복으로 환복하기 위해 나가 달라고 했으나 무시하여, 남학생의 인권을 50대 여교사가 무시하여 치욕을 느꼈다고요. 이런 일이 있나요?”
수업을 위한 열의가 이렇게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요즘 남학생들은 나이 든 여자 선생님을 싫어해요. 자기 엄마의 잔소리가 생각난다네요. 질병 휴직까지 하셨는데 몸 생각하셔야죠. 제가 개입할까요? 아니면 선생님께서 해결하시겠어요? 아무래도 2학기 동안 수업하셔야 하니까 선생님께서 잘 처리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경력도 있으시니까.”
예전에도 학생의 항의는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인정하여 바로잡았고, 학생들이 오해한 것은 근거를 들어 설명하면 힘들고 시간은 걸렸지만,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학생이 친 거미줄에 걸려들어, 그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지 않으면 움직일수록 거미줄이 칭칭 감겼다. 2017년 9월, 나는 학생의 협박에 걸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