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말씀하신 이론을 중고등학교 학교에서는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교수님은 학교 현실을 너무 모르십니다. 교육과정을 위한 자료가 제대로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바쁜 학교 현장에서 말씀하신 것들을 어떻게 준비해서 가르칩니까?”
학생들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 떳떳한 선생이 되기 위해 2005년에 우리말교육대학원(사단법인 전국 국어교사모임에서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운영한 비인가 학력 미인정 대학원)에 입학했다. 전국 연수나 모임 회지에서 알려진 선생님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지만, 아침부터 오후까지 한 주제에 대한 강의에 참여하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어설프고 무례한 질문이라도 하지 않으면 졸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명색이 선생인데 배우는 자리에서 졸 수는 없었다. 육아의 부담까지 벗어던지고 여름방학은 2주, 겨울방학은 3주의 합숙을 했다. 배우고 싶은 의지는 차고 넘쳤지만, 나의 읽기와 듣기 수준은 초라했다. 부족한 이해 수준을 먼 길 오신 강사님들께 화풀이하는 자질 부족한 학생이었다.
9시부터 16시까지 견딘 우리는 저녁 먹기 전에 배운 것을 나누는 시간을 우리말대학원장님과 가졌다.
“배운 것을 풀어보세요. 누가 먼저 말문을 여시겠어요?”
”교수님! 제가 답답한 것은 학교 현장과 상관없는 이론만 늘어놓는데 졸리고 지겨워서 혼났어요. 이런 이론을 학교 선생이 알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최 선생은 학교를 바로 세우고 싶은 사람이 아닙니까?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런 뜻을 가진 분들이시지요? 학생들이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학교의 문제점은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현장을 위한 연구는 연구자의 몫이라고만 하면 현장이 나아지겠습니까? 단행본이나 논문 등을 살펴보며 어렵게 모시고 배우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솔직히 무얼 질문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렵기만 합니다. 에휴”
“첫술에 배부릅니까? 급히 먹는 밥이 체합니다. 천천히 꼭꼭 씹어 자셔야지요. 우선 질문은 상대가 답할 수 있는 내용인지, 말문을 막아버리는 내용인지를 먼저 가려내야 합니다. 후자는 질문이 아니라 인신공격입니다. 그리고 상대에게 더 캐물어서 모인 사람 전체에게 이로운 질문인지도 더불어 생각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도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말도 공감하며 들어내는 듣기와 상대의 말문을 열어주고 마음도 이어주는 질문하는 방법까지 강의 후 저녁 먹기 전의 배운 내용을 정리하는 우리말대학원장 김수업 교수님과의 시간을 더 기다렸다. 이 시간이 없었다면 2년의 일정을 견뎌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수업받는 동안 빌린 대학 기숙사에서 꼼짝없이 감옥살이하시며, 우리를 사제동행으로 가르치셨다. 전국의 대학에서 모셔 온 강사를 맞이하는 예의와 그분들과 함께 점심을 드시면서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이야기와 미소로 시간이 쌓일수록 덩달아 내 말하기와 듣기의 수준도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큰 그림만 그리는 교사용 지도서에서 한 시간의 촘촘한 수업이 쌓인 모자이크화 같은 학교 수업을 위한 자료를 찾기는 어렵다. 손쉽게 주어지는 참고서와 문제집은 항상 정답이 하나이다. 선생의 질문이 하나의 답만 찾기를 요구한다면 그 수업은 지겹다. 이 질문은 이 답만 저 질문은 저 답만 말하면 수업이 끝나기 때문이다. 질문이 흥미로워지려면 이 답이 저 답과도 연결되고, 다른 질문과도 이어져야 관심이 간다. 이런 질문을 하려면 수업 주제와 관련한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 필요하다. 나에게 남다른 경험이 조금 더 있다면 그것은 우리말대학원 초대 원장님이셨던 김수업 선생님 덕분이었다. 나는 선생님께서 그토록 원했던 현장을 밝히는 이론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모임의 일꾼으로도 우뚝 서지도 못했다. 애초에 내가 그 깜냥이 안 되는 능력 탓도 있겠지만, 함께 배우고 실천하는 지역 모임도 제대로 꾸려내지 못했기에 더욱 부끄럽다. 그래서 혼자라도 끝까지 배운 것을 실천하는 선생으로 남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