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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신애 Feb 09. 2024

코로나가 나에게 준 최악의 선물

내가 나를 위로하는 글

그때 당시 내 몸무게 48kg



  뜨거운 여름날, 나는 사무실에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때 코로나 후유증은 냉방병이었다. 가디건을 입고 정신줄 간신히 붙잡으며 나이트 근무를 했는데 다행히 한가한 편이라 내가 아파도 큰 상관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 되지 않나?’라고 하지만 그때 내 상황은, 이미 코로나로 자가격리를 하고 와서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께 더 이상 폐 끼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코로나를 두 번 걸려서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재계약이 안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2022년 8월 15일, 손바닥까지 피가 안 통하는 걸 처음으로 겪었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쥐어짜면서 접수를 하고 있는데 타자를 두드려도 감각이 없어서 내가 잘못 느끼는 건가 싶어 꼬집어 봤는데 통증이 전혀 없었다. 순간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바늘과 칼을 찾아 손에서 피가 나게 찔렀다. 피가 흐르니까 손바닥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시간이 흘렀고 나이트 근무 끝나고 집에 도착해서 누우니까 오전 7시 20분이었다. 근데 웬걸 이제 열이 나네? 40도가 넘는 고열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언니는 집에 없고, 공휴일이라 병원연곳도 없고, 응급실도 못 가겠고, 무엇보다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만큼 내 몸뚱이가 버거웠다. 그렇게 하루를 울면서 기절해 있었던 것 같다. 서울에 올라와서 별의별 사람 상대해 가며 버텼는데 직장도 건강도 잃어버렸던 나의 모습이 처량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위로해주고 싶다. 아픔이 정말 많았지만 그럼에도 선물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이유는, 덕분에 나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죽음’도 나와 가까이 있었다는 걸 알고 쉽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밭도 생겼다.


  응급실에서 재계약은 무산되었지만, 현재 나는 더 크고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근무 중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혼자 울던 내 모습을 그만 불쌍해해야겠다.


신애야 정말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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