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맑음, 그리고 OB
장맛비가 한바탕 휩쓸고 간 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맑았다. 여름의 태양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골프 치기엔 더할 나위 없는 날씨. 평소처럼 골프몬 앱을 뒤적이다, 아난티 중앙CC에 야간 노캐디 조인이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
가격은 다소 높았지만, 노캐디라는 점에서 납득 가능한 수준. 해는 아직 높았고, 5시 티오프. 충분히 괜찮은 조건이었다. 며칠 전 라운드에서 거리측정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탓에 이번엔 스마트캐디 앱의 7일 체험판을 설치해 갤럭시 워치5와 연동시켰다.
성능이 괜찮다면 1년 구독권(5만원)을 결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티오프 2분 전, 앱을 실행하자 워치 화면에는 ‘플레이 시작’이 떠 있음에도 계속해서 체험판 결제 버튼만 반복해서 떠오르며 아무 기능도 작동하지 않았다. 허둥대다보니 빈스윙 한 번 없이 티잉그라운드에 섰고, 첫 티샷은 예상대로 OB. 페어웨이는 지난번보다 훨씬 넓었지만 첫 샷 실패는 내 멘탈에 깊은 금을 냈다.
급하게 예전에 설치해두었던 무료 야디지 앱을 켰지만 GPS는 수시로 끊기고, 시계 화면은 자동으로 꺼졌다.거리 확인에 신경 쓰다가 샷 루틴은 무너졌고, 에이밍은 엉망이 되어 OB, 탑볼, 뒷땅… 최악의 샷들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18홀. 16홀부터는 결국 어떤 앱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 파3에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고 홀 바로 옆에 공을 붙여 파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지난 조인 골프보다 무려 +20. 그야말로 참패였다. 같이 친 분들은 정말 젠틀했고, 한두 번 더 쳐도 괜찮다고 배려해주셨지만 이 먼 곳까지 시간 들여 와서 이렇게 망해버리니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나는 골프에 재능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요즘 나에겐 이것마저도 유일한 낙이었다.
이혼 후, 다시 중심을 잡아보려 시작했던 골프. 그 골프마저 무너지니 잠시 ‘골프를 접을까’ 하는 생각까지 스쳤다. 돌아오는 길엔 시골 네비도 말썽이라 엉뚱한 길로 빠졌고 예정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흘려보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우울한 마음을 안고 집에 도착한 뒤,
나는 어김없이 유튜브에 ‘다운블로우 아이언샷’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고 있었다. '안정적인 임팩트가 안 돼서 아이언샷이 터졌던 걸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시 나를 다잡고, 다시 골프를 다잡는다. 이렇게 또, 골프의 굴레에 빠져든다. 좋은 날씨처럼 언젠가는 스코어도 맑아지기를,
그리고 내 마음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