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를 마지막으로 써본 게 언제일까요? 직장을 지원할 때? 특정 단체에 나를 알리고자 할 때? 이젠 자기소개보다는 이력서나 약력을 보내는 게 더 익숙해진 저에게 이 글을 쓰는 것이 무척 어색합니다.
저는 재이 엄마입니다. 24살 초중고등, 대학교를 거쳐 이제는 공부라는 것에서 '해방'을 외치면 책을 덮었습니다. 그러다 직장을 다니던 중 우연찮게 ‘학생남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남편이 미국에 있어서 신나게 놀아보자 하고 갔더니만... 깡시골로 가게 되어 너무 심심해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첫 교수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해가 2012년이고 우리 재이가 태어난 해입니다. 즉 저의 career의 나이는 재이 나이와 같습니다. 박사학위논문의 최종 심사(dissertation defense)를 마치고 축하파티를 한 날 재이가 태어났습니다. 37주에 양수가 조기에 터져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학업과 출산, 이후 육아까지 뭔가 모든 것을 다 해내는 슈퍼맘처럼 생각하시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슈퍼맘이 아닙니다. 솔직히 아직 '엄마'도 다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겸손해서가 아닙니다. 정말 아직도 자신이 없습니다. 지난 14년간의 육아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신건강학에서는 '해리'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럽고 수용하기 어려운 기억은 분리를 하는 현상입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과 상황에서의 '나'를 여러 자아로 분리하여 2012-2019년 자아는 보이지 않는 골방에 집어넣어 논 것 같습니다.
재이는 태어나고 약 6주 후에 한국으로 보내졌습니다. 미국 중부의 대학에서 조교수를 시작한 제가 동부에 있는 남편과 long distance로 살면서 만 2살인 재이 누나와 함께 재이를 돌보기는 너무 벅찼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외할머니가 1년, 친할머니가 2년 길러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하지요.
2015년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 가족 4명이 드디어 한 집에서 살게 되면서 저는 재이엄마를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생경함과 당황스럼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첫째와 너무 다른 행동과 산만함, 또한 그간 허용적 훈육을 통한 통제되지 않는 모습으로 ‘이거 큰일 났구나.’ 싶었습니다. 유학생 엄마들 사이에서는 흔히 ‘애를 한국에 떨어뜨려놓으면 그 기간 곱하기 2를 해야 제로 상태가 된다. 그 뒤에 남들이 하는 애착형성을 시작할 수 있다.’라는 말을 암묵적으로 합니다.
저는 그럼 6년이 필요할 것이고 재이가 9살은 돼야 남들이 신생아 시기에 한다는 엄마와의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정말 그 6년은 제 인생의 고난의 시기였습니다. 재이를 이해하기도 훈육하기도 교육하기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직은 ‘내 아들’이라는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저는 엄마의 기능을 하려고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하루하루가 고통과 난장판이었습니다.
매일 가르치고, 혼도 내보고, 달래도 보고 하지만 내일이면 다시 제자리. 이젠 할 때도 됐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건데.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고 너무 막막했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을 하면서 매일 오는 유치원, 학원 선생님의 전화에 시달리면서 직감적으로 ADHD임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진단을 받고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평범하게 키우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이 정도는 해야 다른 아이들과 섞여 있어도 티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다른 아이들이 다니는 태권도, 수영, 피아노, 국영수 학원, 학습지 등 다 했습니다. 학원을 보냈다가 과외를 해보았다가 그도 안되면 엄마표도 해보았다가,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아무리 평범한 아이들이 다니는 곳에 재이를 보내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시켜도 재이는 가는 곳에서 항상 눈에 띄었습니다. 재이가 평범하지 않음이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재이가 3학년 때까지 직장 다니느라 내가 신경을 못 써서 그런 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4학년 때 1년간 갔던 미국 출장에서는 제가 끼고 가르쳐봤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담은 엄마숙제를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하다 보면 습관이 잡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또 실패였습니다.
그리고 5학년인 지금 저는 재이를 좀 놓고 있습니다. 사실 이게 포기와 내려놓음의 연속성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정도는‘ ’ 보통의‘ ’평범한 ‘ 아이의 모습을 ’평범하지 않은 ‘ 재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애초에 맞지 않은 생각임을 저도 남편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때려서, 소리 질러서, 협박해서, 회유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따라서 나 역시도 ’평범하지 않은 ‘엄마가 되어야 재이와 발맞추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하루하루 깨달아가면서 우리만의 삶을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다 잡습니다. 매일매일.
그런데,
오늘 재이가 시무룩합니다. 반 친구들이 ‘재이 엄마는 이상한 사람인가 봐. 어떻게 저렇게 공부를 못하는데 그냥 두냐.’라고 친구들이 말했다고 합니다. 고개를 숙이면서 눈물을 글썽거리고 '패드립'이라면서 속상해합니다.
전과 같으면 이런 말에 너무 화가 나고 부끄럽고 불안했을 텐데…. 지금은 아닙니다. 재이와 저는 그간 살아온 인생도 앞으로 살 인생도 앞으로 남들에게 이런 시선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린 정말 남들과는 다릅니다. 이상하지 않은 그들의 세상에서 다른 방향을 가는 우리가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재이와 재이엄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원하는 삶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남들과 같아질 수 없고 같아질 이유도 없습니다. 그게 재이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