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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간월재에서

바람

by 조아마

늦가을 간월재에 올라본 적이 있는가.


우아하게 말고 감고 드리운 머리모양과 옷차림새는

휘감겨오는 바람에 아무 흔적조차 잃는다.

본체가 아닌 것들은 붙잡히질 않아서

바람 전에 아무리 정성을 들였던들 알아챌 방법이 없다.

그저 온데간데없다.

그곳에 붙어있는 것들은

저마다 스스로의 본체.

젊어서 거느린 빛나는 색채도

한창 떨치던 향기도

때 되어 맺은 결실도 모두

바람에 바람에 떨어지고

이제는 찾아오는 나비마저 떨어지고

본체인 것들만 서서

오롯이 버티거나

무리 지어 바람을 탄다.

바람에 털어낸다.

처음부터 내가 아니었던 것들

그때는 나였으나 이제는 내가 아닌 것들.

가라

가야 할 곳으로

네가 본체일 곳으로.

미처 놓지 못한 너무나 사랑하는 것까지도 놓치고

어리둥절하거나 아프거나

종내 홀가분해진다.

웃을 수밖에

허허하고 실실이 웃음이 새다가 그만 까르르 터질 수밖에

털어지고 가벼운 것들은 우습다.

본체인 것들은 우스꽝스럽다.

우스꽝스런 본체들이 모여 서서 출렁출렁 춤춘다.

나를 포함한 그 모습에 경탄한다.


늦가을 간월재에서 출렁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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