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차 [방사선치료]
구토 증상은 이제 점점 사그라드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울렁거리고 기운이 없어 거의 이틀 내내 누워만 지냈다.
이토록 눌을 힘들게 하는 건 항암제 보다도 글러볼린(토끼혈청)인 듯싶다.
하루에 8시간씩 맞는 건데, 곧 있을 골수 이식 후 거부반응을 예방하기 위해 맞는 거라고 했다.
골수이식이 바로 내일.
그래서 오늘은 방사선치료를 2번 한다.
새로운 세포들이 이사 올 집을 깨끗하게 치워주는 일이다.
전에 살던 세포들의 흔적을 지우는 일.
새로 이사 올 세포들은 눌의 일란성쌍둥이 자매 [온]의 세포들이다.
기증자를 찾는 일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우리의 경우는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럭키!!] 이다.
무균실 생활 8일 만에 문 밖을 나갈 수 있게 됐다.
가기 전에 눌은 위생모자와 마스크 두 겹을 쓰고 일회용 어른가운으로 포대자루 마냥 몸을 감싸고 나서야 휠체어에 앉을 수 있었다.
대학병원이다 보니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건물 안인데도 후덥 했다.
병실로 들어오는 간호사마다 “오늘 날씨 정말 더워요.”라고 했지만 병실의 적정 온도에도 추위를 타는 나는 공감을 할 수 없던 말이었다.
그런데 밖에 나와보니 잠깐 걸었음에도 땀이 날 것 같았다.
그제야 ‘아, 여름이구나.’ 했다.
지나쳐가는 병원 내 커피숍에서는 강한 커피 향을 풍겼다.
오랜만에 그리운 향을 맡으니 침샘이 찌르르했다.
물론 병실에서도 커피는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 마시는 것과 커피숍에서 마시는 커피의 맛은 엄연히 다르다!!
휠체어를 밀어주시는 주임님께 “잠시만요. 커피 한 잔만 사가도 될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다행히 이성이 막아주었다.
입원 전, 방사선치료를 위해 눌의 전신틀과 마스크를 미리 제작했었다.
치료실은 무균실보다도 추웠다.
그런 곳에서 눌은 탈의를 해야 했다.
원래도 말랐던 아이가 며칠 만에 더 앙상해져 있었다.
눌은 추워서 몸이 벌벌 떨었다.
담당의사가 틀에 눌의 몸을 맞추고는 “움직이지 마세요.”라고 했다.
아이가 저렇게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데 과연 안 움직이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보호자는 밖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눌은 엄청 커다란 원통 기계를 왔다 갔다 하며 방사선을 쏘이게 될 것이다.
저렇게 추운 곳에서 아이가 버텨줄지 걱정이 됐다.
방사선치료는 생각보다는 빨리 끝났다. 20분 정도?
그렇게 오전 치료와 오후 치료를 끝냈다.
오후 치료를 끝내고 오래간만에 눌의 몸을 씻길 수 있게 됐다.
방사선치료를 위해 온몸에 십자로 그어져 있는 잉크가 꾸덕하게 굳어있었다.
씻기는 거라 해봤자 가제손수건에 소독약을 묻혀 살살 닦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안 그래도 춥디 추운 방사선치료실에 겨우 탈출했는데 엄마는 눈치 없이 아이의 옷을 벗기고 있다.
그동안 잘 참아왔던 아이였다.
꾹꾹 눌러 담던 설움이 소독약 묻힌 가제손수건 때문에 폭발하고 말았다.
7살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말은 고작해야 “엄마 미워!!”였다.
“그렇지? 추운데 또 춥게 해서 엄마 밉지~ 빨리 따뜻하게 해 줄게.”
라고 맞장구치고 서둘러 따뜻한 물을 받아와 손수건에 물을 묻히고 몸에 가져다 댔다.
따뜻함이 닿으니 고새 풀려버리는 쉬운 아이.
그렇게 빨리 몸을 닦고, 옷을 입히고는 우리는 한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
이제 드디어 눈물로 기다리던 이식날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