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러 죽어라 열심히 사니?

공부도 적당히만 하고 인생을 즐겨라

by 박성옥

한국인의 근성

미국에 유학생으로 온 지 곧 20년이 된다. 나도 열심히 살긴 했지만, 먼저 온 이민 선배님들이 길을 잘 닦아놓은 덕에 어디를 가나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일단 환영을 받곤 했다.


동양인 중에서 특히 한국인은 하는 일마다 열심히, 똑똑하게, 훌륭하게 해내는 근성이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성실함, 책임감, 도덕적, 꾸준함, 자기 통제력, 직업윤리 등이 모두 긍정적인 편이다.


모든 한국인이 태어날 때부터 그러하겠는가! 사회가 만들어낸 기대치가 워낙 높기도 하고, 문화적으로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미국에 오면 뭘 해도 평균 이상은 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요즘 자주 생각한다. "뭐 하러 그렇게 죽어라 열심히 살아왔나."


달려야 할 때와 속도를 늦춰야 할 때

내 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출산과 동시에 육아와 공부를 병행해야 했던 박사생이었을 때였다. 그때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앞만 보고 달렸다. 달려야만 했던 시기였기에 그렇게 달려온 시간과 노력에 대해 후회는 없다.


후회가 되는 시기는 그만 달려도 되는데 속도를 늦추지 않고 질주한 기간이다. 정년심사를 마치고 조교수에서 부교수가 된 해에도 달리고 있는 나를 보고 스스로 지쳐버렸다.


죽어라 열심히 살아야만이 삶이 더 나아지리라 믿었던 것은 아이었다. 그저 무엇을 위해 달려야 하는지를 모른 채, 속도를 늦춰도 되는 건지를 몰랐다. 속도를 늦추고 싶어 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다.


호텔에서

주말에 시급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달았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호텔에서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다. 다른 하우스키퍼보다도 더 빨리, 더 깨끗하게, 더 야무지게 객실을 준비한다. 하루는 슈퍼바이저가 다가와서 하는 말이,


"객실 하나당 30분씩 할애하면 돼. 더 빨리 청소할 필요도 없고 정해진 시간 안에만 하면 돼."


내가 더 열심히, 더 빨리 움직여봤자, 시급에 변화가 없으니 적당히 지치지 않을 정도로 일하라는 의미의 진심 어린 충고였다. 이 충고는 내가 "왜 그동안 죽어라 열심히 살아왔을까?"라는 중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호텔에서 처럼 시급제로 일하다 보면 단순노동의 한계를 직면하게 된다. 특별히 더 잘할 것도 없고, 더 열심히 해도 티도 안 나고, 더 잘한다고 시급을 올려 받을만한 일은 아니기에, 적당히 매뉴얼대로 해야 할 일만 하게 되는 것이다. 더 잘하려고 애쓰다 보면 잘한 일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지 않아서 지쳐버린다.


교수도

교수라고 다를 것도 없다. 영혼까지 갈아 넣어가며 강의를 한다 한들 연봉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논문 한 편 더 출판한다고, 연구실적이 좋다고 보너스를 주는 것도 아니다. 물론 학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고 이런 일들로 인해 개개인의 교수가 성장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적절한 선이 있다. 그 선에서 훌쩍 넘기 위해 굳이 죽어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내고, 다른 동료에게 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양심적으로 떳떳하게 월급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잘' 하면 된다. '잘'의 의미는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학벌

휴직을 했다. 달려온 페이스 때문에 속도조절이 힘들어 안 되겠다 싶어서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여러 각도에서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하버드를 졸업한 교수도, 동네 주립대를 졸업한 교수도 우리는 그저 동료이자 심지어 연봉도 같다.

육사 졸업생이나, 학사장교나, 출신이야 어떻든 장교 월급은 똑같다.

의사도 학벌보다는 전공과 지역이 훨씬 더 큰 영향을 준다.


학벌이 답이 아니네. 특히 미국에서는 학벌에 목숨을 걸 이유가 너무 없네.


딸아, 공부도 적당히만 하고 지금은 즐겨라

나에게는 두 딸이 있다. 어디 가서 자랑하지는 않지만 공부를 꾀 잘한다. 성적도 좋지만 오케스트라 악장도 하고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아서 하는 일마다 캡틴이다. 보통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부모라면 아이비리그 못 보내서들 안달일 게다.


하지만 딸아,

엄마도 아빠도 살아보니 학벌보다는 네가 무엇을 정말 하고 싶은지를 찾는 게 더 중요하더구나.

의대를 가고 싶은 건지, 의사가 되고 싶은 건지, 그냥 막연하게 병원에서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렴.

의사가 아니더라도 의료계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거든.

의대를 가고 싶다면 전액 장학금을 주면서 모셔간다고 하지 않는 이상, 굳이 동부로 갈 필요가 있겠냐.


지금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십 대의 마지막 학창 시절을 즐길 때란다.

공부는 적당히 하고 친구들과 많은 추억을 쌓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즐길 때란다.

휴학을 하고 해외 교환학생 지원을 해보아도 좋지.

진짜 공부는 네가 정말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뛰는지를 찾았을 때 깊이 파고들어도 늦지 않더구나.


뭐 하러 죽어라 열심히 사니?

공부도 적당히만 하고 인생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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