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 "척" 가식 부리지 말고, 차라리 물어봐라
미국 호텔에서 대다수가 스페인어를 한다
호텔에서의 하루는 늘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채워진다. 특히 하우스키퍼는 영어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함께 일하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지금 일하는 호텔에서는 대부분의 하우스키퍼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영어와 스페인어를 잘해야 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이렇게 다양한지 하우스키퍼일을 하면서 더욱 체감한다.
트레이닝
일을 새로 시작하는 하우스키퍼는 5일간 유급 트레이닝을 받는다. 보통은 친구의 소개로 오기 때문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트레이닝을 맡는다. 같이 일하는 하우스키퍼들은 국적은 다르지만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에서 이민온 사람들이라 다수가 스페인어를 쓴다.
스페인어가 통하지 않는 하우스키퍼는 국적과 상관없이 내가 트레이닝을 담당하게 된다. 어떤 때는 번역기를 사용해 가며 트레이닝을 한 적도 있다.
오늘은 나이지리아에서 온 새로운 하우스키퍼를 트레이닝하게 되었다. 나이지리아는 500개가 넘는 언어가 공존하는 다언어 국가다. 하지만 영국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영어가 공식 언어로 자리 잡았기에 영어로 소통은 가능하다. 그래서 오늘 트레이닝을 한 하우스키퍼는 매우 강한 나이지리안 액센트는 있을지언정 트레이닝하는데 언어로 인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배우고자 하는 태도
인상 깊었던 것은 그녀의 언어 능력이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태도였다.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질문했다. 예를 들어, 침구를 정리하는 순서를 설명할 때 내가 “시트의 모서리를 이렇게 잡고 당겨야 한다”라고 말하면, 그녀는 정확히 어떤 각도로 잡아야 하는지, 어느 정도 힘을 줘야 하는지 다시 물었다.
또 욕실 청소 기준을 설명할 때도 “이 부분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왜 이 순서대로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있었다. 지난 4년간 수없이 많은 하우스키퍼를 트레이닝해 왔지만 이런 모습은 오늘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하우스키퍼는 내가 시범을 보이며 설명할 때, 대충 보면서 “오케이”라고 말하며 넘어가거나, "이렇게 단순하고 쉬운 거 나도 할 줄 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문화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결국은 진짜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때가 대부분이다. 결국 객실을 맡게 되면 실수가 반복되고, 슈퍼바이저에게 지적을 받고, 점수가 깎이게 된다. 그때 가서야 “그렇게 배운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모습은 내가 교육대 교수로서 강의실에서 마주하는 장면과 놀라울 만큼이나 비슷하다. 학생들 중에는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들이 있다. 그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성실해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가식에 가깝다. 이해하지 못했을 때 질문하는 것은 학생의 권리이자 의무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배우러 온 학생이라면,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질문을 하지 않은 채 과제나 시험에서 막히면, 그들은 종종 남 탓을 한다. “교수가 잘 못 가르쳐서 그렇다.” “그 수업에서 배운 게 별로 없다.” 이런 변명을 한다.
같은 강의실에서 같은 교수에게 배웠음에도 어떤 학생은 훌륭한 선생이 되어 현장에서 인정받고, 어떤 학생은 졸업조차 힘들어하거나 임용고시에서 계속 실패하기도 한다. 그 차이는 결국 배우고자 하는 태도, 그리고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모르는 것을 인정해야만이 더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데 말이다.
모르는 것이 죄가 아니라, 아는 "척" 하는 것이 나쁜 것
오늘 트레이닝을 받던 나이지리아 직원의 모습은 바로 그 점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이해를 확장했고, 나는 그녀의 질문 덕분에 설명을 더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결국 배움은 일방향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며, 질문은 그 상호작용을 가장 건강하게 만드는 도구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미국에서 많은 유학생이나 이민자들이 영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때도 “오케이”라고 말하며 넘어가거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자주 본다. 물론 문화적인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한 "척"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진실되지 못한 행동이다. 거짓말이나 다름이 없다.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가면 결국 더 큰 오해가 생기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도 온전히 돌릴 수 없다. 일상에서도, 직장에서든, 강의실에서든 모르는 것을 정중하게 다시 묻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오늘의 경험은 나에게 다시 한번 확신을 주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결국 어디서든 성장한다는 것. 그 마음이 있는 한, 우리는 서로에게 더 나은 동료이자 더 나은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언어도, 국적도, 직업도 초월한다. 배움은 결국, 진실함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실천 (가식≒거짓)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두 딸들은 매일 새로운 단어를 입에서 쏟아낸다. 한국어를 잘 구사하기는 하지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흥분해서 말할 때는 내가 모르는 영어단어가 마구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엄마는 교수라면서 이런 단어도 몰라요?"라고 할까 봐 그저 끄덕이며 문맥상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려고 애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 앞에서 진실하지 못할게 뭐람~ 못 알아듣는 게 죄가 아닐진대 말이다. 가식적으로 알아듣는 척하는 게 되려 떳떳하지 못한 거 아닌가? 가식은 거짓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말이다.
그래서 딸에게 "그게 무슨 뜻이야? 이렇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의외로 엄마에게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신조어를 가르치는걸 얼마나 신나 하는지 모른다.
"엄마, 교수가 이런 말 하면 엄마 학생들이 쏘쿨하면서 놀랄걸? 인기 정말 상승할 거야." 하면서 발음 연습까지 시킨다.
솔직히 내가 그런 신조어를 쓸 일은 없긴 하겠지만,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겠다며 질문하는 엄마를 마치 신세계로 인도해 주는 것 마냥 신나서 가르치는 딸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자칫 막혀버리기 쉬운 사춘기 딸과의 대화는 한마디도 소중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