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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옥 Aug 23. 2023

이 남자 너무 섹시해

성적 취향이 독특한 청소부

"성적 취향도 참 독특해. 은밀한 여교수가 따로 없다니까. 남편도 박교수 이런 거 알아?"


후각

나는 후각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객실 문을 열면 남자 손님인지, 아이가 있는 가족인지, 노인인지, 샤워를 자주 하는 사람인지, 때로는 인종까지도 맞출 수 있다.


"똑똑, 하우스키핑!"


문을 열자 매우 신선한 냄새가 났다. 신선하다기보다는 깨끗한 남자 냄새가 났다.


성적 취향

방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책상에는 노트북과 마우스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침대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세면대였다. 전동칫솔, 치약, 가글, 치실, 면도기와 면도 크림, 그리고 남성 파우치가 일정한 간격으로 일자정렬되어 놓여있었다. 거울에 물튀김이 없고 세면대도 안 쓴 것처럼 깨끗했다.


보이스톡하던 쑥쑥 언니에게 나의 흥분감을 생동적으로 전했다.


"나 이 손님 진짜 어떤 사람인지 한 번만 보고 싶다."

"아니, 박교수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성적 취향이 참 독특해."

"깨끗한 남자 좋아.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 정말 섹시해."


유쾌쑥쑥

호텔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기다리는 동안 쑥쑥 언니에게 호텔 아르바이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언니는 적극 찬성했다. 유학생 비자만 아니었다면 당장 이력서를 들고 따라나설 태세였다.


쑥쑥 언니는 유쾌쑥쑥 유튜버 선배다. 언니가 미국에 있는 동안 같이 영상을 만들고 편집하며 기나긴 코로나를 버틸 수 있었다. 위아래로 형제만 있는 나에게 이 적막한 이민생활에 마음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언니가 생겨 더없이 즐거웠다.


어느새 언니도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해야만 했다. 호텔로 출근하는 미국시간과 쑥쑥 언니가 취침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눕는 한국시간이 딱 겹친다. 에어팟을 귀에 꽂고 힘차게 청소카트를 밀며 통화를 시작한다. 언니는 호텔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듣는 것을 매우 즐거워한다.


"언니, 이 남자 하는 짓이 너무 섹시하지 않아?"

"하여간 엉뚱해. 교수엄마 때려치우고 차라리 은밀한 여교수 하면 조회수 많이 나오겠다."


은밀한 여교수

한국에 가면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다. 그중에 하나는 로맨틱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남편 품에 안겨 가슴근육(대흉근)을 어루만지며 잘 잤는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등 중요하지 않은 얘기들로 한참 수다를 떨고 슬슬 일어난다. 그러고는 여유 있게 한강을 바라보며 커피를 나눠 마시며 오늘 스케줄을 확인하고, 각자가 꿈꾸는 은퇴 후의 일상을 공유한다. 그제야 일어난 두 딸내미들이 눈을 비비며 우리에게 와서 한 명씩 안기는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며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다.


섹시한 남편

얼마 전 여름방학에 한국에 갔었다. 드디어 현실에서 시뮬레이션 대로 실행해 보고자 아침에 팔을 뻗혀 더듬어보는데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아, 이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내가 코라도 골아서 남편이 거실로 도망갔나? 생각하던 찰나, 화장실 문이 열렸다.


화장실에 갇혀있던 뿌연 수증기가 안방으로 퍼짐과 동시에 하얀 수건으로 하체를 둘러멘 남편이 걸어 나왔다.


"나도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 샤워까지 마치다니."


남편이 화장대 앞에 서서 스킨을 부지런히 바르는 모습을 은밀하게 훔쳐보았다. 흐트러짐이 없고 부지런한 모습과 오랜만에 맡아보는 남자 스킨향이 어우러져 본능을 자극시켰다.


"자기 진짜 부지런하고 너무 멋있다."

"어, 일어났어? 소리 때문에 깼구나. 더 자."

"자기야, 오늘 출근 꼭 해야 돼?"

"네, 교수님. 저는 강의를 캔슬할 수 있는 교수가 아니라서 꼭 출근을 해야 한답니다."


남편을 아쉽게 보내놓고 쑥쑥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 취향이 정말 독특한 건가?

흔히들 말하는 큰 키, 남성적인 얼굴, 저음의 목소리...

이런 특징들 보다는

몸에 베인 바른 행동이나 가치관에 끌린다.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은 어느 각도에서 보나 섹시하다. 뒷모습까지도 멋있다.


"섹시한 뒷모습은 수영장에서나 보는 거야."

"언니야 말로 유쾌쑥쑥 하지 말고 은밀 쑥쑥 해."


은퇴

늘 유쾌한 쑥쑥 언니가 진지하게 말했다.


"박교수는 은퇴해서 남편이랑 합치면 잔소리 많이 할 것 같아."

"언니도 참, 내가 왜? 뭘 보고 잔소리를 많이 할 것 같다는 거야?"

"그 특이한 취향을 만족시킬 남자가 어딨냐. 남편이 빈둥대는 꼴을 못 볼 것 같아."

"언니처럼 수영장에서 볼 수 있는 섹시함 보다는 내 취향에 딱 맞는 남편이라 잔소리 들을 짓은 안 할 것 같아. 걱정 마."


은퇴하고 같이 빈둥거리며 지낼 수 있는 날이 속히 오면 좋겠다.


그때는 내 취향이 바뀔 것 같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여유 있는 행동과 느긋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섹시함으로 말이다. 그러한 섹시함 역시 나이테가 한 줄씩 늘어가듯 지금의 자기 관리라는 연륜이 쌓여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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