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정희
시인 고정희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름 석자가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찬찬히 이력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민족, 민중, 여성의 해방을 처절하게 실천한 시인이자 여성운동가. 독신. 43세. 1991년 6월 9일. 비 내리는 지리산 뱀사골에서 실족사.'
그래도 생소하다면 1992년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를 내놓은 창작과 비평사의 광고 카피를 보면 그의 존재는 더 명확해진다.
'화약냄새보다 더 강한 시의 향기를 뿜어냈던 서정시인이자 여성운동가로서 짧고 정열적으로 살다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고정희의 유고시집. 여기에 실린 '밥과 자본주의' '외경 읽기' 연작, 통일굿마당시 등은 기독교적·민중적·여성해방적 시각으로 민족통일과 민중해방에 대한 희망과 투쟁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 화보 및 연보 수록.'
오늘은 고정희 시인 34주기다. 그의 부음을 듣고 가슴을 쓸어 내린게 엊그제 같은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를 만날 기회가 몇번 있었다. 모두 내 게으름 탓에 그러질 못했다.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고정희는 누가 뭐래도 민족 민중 여성해방을 몸소 실천한 시인이 맞다. 이름 앞에 '여성운동가''민중운동가'라는 칭호가 늘 훈장처럼 붙어 다녔다. 이미 그렇게 각인된 존재니 부정할 생각도 없다. 그런 삶을 살았으니까. 하지만 그의 생애 마지막, 그러니까 10번째 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유고시집에 수록된 시도 그렇고 저 카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사로서의 이미지만 부각해서다. 화약냄새보다 더 강한 시의 향기라고? '전쟁터를 진동하는 화약연기처럼'도 아니고, 그보다도 더 강했다고? 모든 시가 다 그랬을까. 아니다. 모두 화약냄새가 난건 아니다. 강했던 고정희도 애틋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비가 오는 날, 수없이 가슴이 무너지던 새벽, 나는 이 시를 수없이 꺼내 읽었다. 화약냄새를 맡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글거리는 전투력이 그리워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이 시가 가슴에 와닿았다. 특히 하늘이 꾸물거리며 비가 마구 쏟아질 태세를 하고 있거나, 내리기 시작하면 이 시는 더 절실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늘 투쟁했던 고정희에게도 이런 여린 감성이 살아 있었다. 그는 시인이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가슴에 잉잉하게 차 오르는 사람/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그 불 다시 사그라질 때까지/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스스로 떠 오른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 오르는 아침이면/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불쑥 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 중에 흩어지는 너,/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전문)
'무너지는 것들을 위해서'라는 시도 있다. 전문이다.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 밟습니다 내가 위로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고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날 분별없이 뿌린 말의 씨앗, 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 말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란 나이를 제대로 꽃 피우기란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 락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 없는 내 사지에 돌을 눌러둘 수는 없습니다
전투적이고 여성해방 민족해방만 부르짖었다던 고정희가 생의 마지막에 연시를 쓴 것에 대해 고정희 연구자조차도 놀란것 같다. 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가득 채운 연시와 특히 '시인의 말'에 당혹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때 나도 그랬다. 고정희가 변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참 좋았다. 시인의 변신은 누가 뭐라해도 무죄다.
이 시집,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당신께 바칩니다. 당신을 향한 나의 믿음, 신뢰, 소망, 기쁨, 고통, 노여움, 그리고 사랑과 힘이 이 시집의 기록입니다.
시 편편 글자마다 나와 이 세계의 문으로 상징되는 당신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어느 한 편도 눈물 없이 쓸 수 없었던 이 시편들, 그러나 사랑의 화두에 불과한 이 연시 편이 모든 이의 고통과 슬픔을 승화시키는 노래가 되기를, 그리고 내가 더 큰 사랑의 광야에 이르는 길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1990년 가을 고정희
그의 투쟁적인 글쓰기에 열망하던 연구자와 독자들이 연시에 화들짝! 놀란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다. '여성의 억압과 여성해방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고정희의 시는 보통 이랬다.
'깡마른 여자가 처마 밑에서/술 취한 사내에게 매를 맞고 있다/머리채를 끌리고 옷을 찢기면서/회오리바람처럼 나동그라지면서/음모의 진구렁에 붙박여/증오의 최루탄을 갈비뼈에 맞고 있다/속수무책의 달빛과 마주하여/짐승처럼 노예처럼 곤봉을 맞고 있다//여자 속에 든 어머니가 매를 맞는다/여자 속에 든 아버지가 매를 맞고 쓰러진다/여자 속에 든 형제 자매지간이/매 맞고 쓰러지며 피를 흘린다/여자 속에 든 할머니가 매 맞고 쓰러지고/피 흘리며 비수를 꽂는다/여자 속에 든 하느님이/매 맞고 쓰러지고 피 흘리며 비수를 꽂고/윽 하고 죽는//깊은 밤 사내는 폭력의 이불밑에 잠들고/세상도 따라 들어가 잠들고/오뉴 월 한 서린 여자의 넋 속에서/분노의 바이러스가 꽃처럼 피어나/무지개 빛깔로/이 지상의 모든 평화를 잠그고 있다/아아 하늘의 씨를 말리고 있다' ('매 맞는 하느님-여성사 연구 4'전문)
고정희가 떠난 후, 유품을 정리하던 동료와 가족은 책상 한가운데 정서해 놓여 있던 시 한 편을 발견한다. 그게 그 유명한 유작 '독신자'다. 시인은 이 시를 쓴 후 지리산으로 향했고 사고를 당한 것이다. 당시 이 시가 어느 신문에 게재된 후, 가족이 항의하는 등 파문이 일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것처럼 기사화된 것도 그렇고 자칫 가십거리로 다뤄져 쓸데없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품의 해석은 평론가가 아니라 언제나 독자의 몫이다. '독신자'전문이다.
환절기의 옷장을 정리하듯
애증의 물꼬를 하나 둘 방류하는 밤이면
이제 내게 남아 있는 길,
내가 가야 할 저만치 길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 거린다
크고 넓은 세상에
객사인지 횡사인지 모를 한 독신자의 시신이
기나긴 사연의 흰 시트에 덮이고
내가 잠시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달려와
지상의 작별을 노래하는 모습 보인다
그러므로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
모든 영혼은 풀잎 위의 이슬과 같은 것,
풀도 이슬도 우주로 돌아가, 돌아가 - (한 XX)
강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어라
강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어라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이어라-(강 XX)
잊어야 할까 봐
나는 너를 잊어야 할까 봐
아무리 붙잡아도 소용이 없으니까-(노 XX)
하느님 보시기에 마땅합니까?-(김 XX)
오 하느님 죽음은 단숨에 맞이해야 하는데
이슬처럼 단숨에 사라져
푸른 강물에 섞였으면 하는데요-(나)
뒤늦게 달려온 어머니가
내 시신에 염하시며 우신다
내 시신에 수의 입히시며 우신다
저 칼날 같은 세상을 걸어오면서
몸이 상하지 않았구나, 다행이구나
내 두 눈을 감기신다
1991년 6월 9일은 일요일이었다. 분명 기상청은 지리산 일대에 큰 비가 온다며 주의보를 내렸을것이다. 그럼에도 고정희는 도망치듯 산행을 감행한다.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사족이다. 그래도 고정희는 복 받은 시인이다.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추앙받은 지는 이미 오래됐고 매년 그의 고향 해남에선 기일을 맞아 문화제가 열린다. 더 나아가 학계에선 고정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범위도 이제 문학을 넘어 여성학 사회학 등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10년 단위로 대단위 학술제도 열린다. 추모 20주기, 30주기에 발표된 글들을 모아 지지난해던가,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 다시, 고정희'(소명출판 간)도 출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들불처럼 더 크게 조명받는 시인은 아마도 고정희가 유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성운동가보다 10여 년의 짧은 기간 10권의 시집을 내며 치열하게 살다 간 좋은 시인으로 고.정.희 이름 석자를 기억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장마 전선이 올라 온다고 한다. 세찬 비가 내릴 것이다. 누구보다 자의식이 강했고 누구보다 지리산을 사랑했던 시인 고정희. 그가 그립다. 부디 그 곳에서 평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