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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무엇인가

시인 신경림

by 명랑낙타




작았다. 보는 순간, 녹두장군의 키도 아마 이 정도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장군은 부리부리한 눈을 가졌다고 들었는데, 시인의 눈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웃으면 눈가에 주름도 잡혔다. 그냥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첫인상이 그랬다. 그게 어제 같은데, 어처구니없게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시인은 이제 우리 곁에 없다.


오늘은 시인 신경림 1주기다. 시인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유고시집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출간일 것이다. 창비시선 518번째 시집이다. 창비시선 1번 '농무'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한정판 '농무'도 선보였다. 아! 벌써 50년이 흘렀다니 시간이 참으로 빠르다.


'농무'를 읽었을 때의 감동이 지금도 마음속에 온전히 남아있다. 나만 그랬을까. 아니다. 그 시절, 시인의 친구들도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를 시인의 길로 인도했던 절친 유종호도 그랬고, 창비 창업자 백낙청도 그랬다. 그래서 김광섭의 '겨울날', 박봉우의 '황지의 풀잎' 김관식의 '다시 광야에' 이시영의 '만월' 김현승의 '마지막 지상에서' 황명걸의 '한국의 아이'를 제치고 창비시선 1번으로 '농무'가 낙점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농무'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한국 민중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백낙청은 발문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들에게 신경림씨의 작품들이 한 묶음 되어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반갑고 든든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보아라 이런 시집도 있지 않은가,라고 마음 놓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창비시선이 한국문학사 끼친 영향은 3박 4일 동안 얘기해도 끝이 없다. '문지시선'과 함께 한국문학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시인이며 창비시선 기획위원이었던 고형렬은 '창비시선'을 명쾌하게 요약했다.


' 늙지 않은 원로, 갱신 중인 중진, 참신한 신예의 조화로운 시집 출간은 독자들을 열광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향 각지에서 시인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그 어느 날 창비시선이란 이름으로 시인들은 곳곳에서 찬란한 시의 날개를 달았다. 시가 시민들의 것임이 증명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문학의 위의(威儀)를 체험하고 새로운 역사와 사회를 향한 가슴 벅찬 인식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창비시선이 문학의 한 이름이었고 시의 정신이었다'


그 문을 '농무'가 열었다. '농무'가 발표되었을 때 모두 깜짝 놀랐다. 도시 노동자가 아닌 농민들의 삶과 농촌의 현실,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우리 민요 가락에 담아 '서정적'으로 풀어냈다. 그 솜씨가 일품이었던 것이다. 시뿐만이 아니다. 산문도 뛰어나서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나는 지금도 틈틈이 읽고 있다. 시인을 만나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시인 나름 풀어내는 시평이지만 결국 1,2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시란 무엇인가'이다.


시인은 그 유명한 1976년 6월 단국대 강연 '나는 왜 시를 쓰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 정신으로 평생 시를 써 왔다. 요약하면 이렇다.


'시가 민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서 시 속에 우리 고유의 민요적 가락을 되살리는 것이다. 자료를 모은다는 구실로 시골, 특히 남한강 일대를 여러 번 돌아다녔는데 강마을 어딜 가나 들을 수 있었던, 농민들 사이에 전승되어 오고 있는 민요가락만큼 감동을 준 것은 없었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니 않았지만, 거기에는 우리의 어떠한 현대문학 작품도 형상화하지 못했던 민족의 한과 설움, 견딤과 참음, 끈질긴 생명력이 넘치고 있었다.

이를 시 속에 끌어들이는 것이야 말로 시가 민중의 사랑을 되찾기 위하여 매우 시급한 일이라 생각했다.'


시인은 이날 “난해시가 생겨나는 가장 큰 원인은 민중적 바탕을 잃은 데 있는 까닭”이라고 단언하면서 시가 민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민요시의 가락을 살려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시와 민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그런 시인이 나는 참 좋았다.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의 유고시집에서 개인적으로 이 시가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좋은 시는 이런 것이다. 자꾸 마음을 긁어대는. 나도 시인처럼 스물,서른,마흔의 시절을 보냈다. 그래선가. 자꾸 눈물이 난다.


'복사꽃 살구꽃이 피어 흐드러지고 안개를 뚫고 햇살이 스민다.나는 먼 나라, 더 먼 나라로 가는 꿈을 꾸면서. 당신과 함께 나의 스물에.


종일 나는 거리를 헤맨다.문득 기차를 타고 가다가 산역에서 내리기도 하고. 모차르트를 듣고 트로츠키를 읽는다.당신의 눈빛에서 꿈을 놓지 않으며. 당신은 나를 내 나이 서른으로 이끌고 가고.


세상은 어둡고 세찬 바람은 멎지 않는다. 나는 집도 없고 길도 없는 사람. 달도 별도 없는 긴 밤에, 빈주먹을 가만히 쥐어보면 문득 내 앞에 나타나는, 당신은 나의 마흔에서 온 사람.'('당신은 시간을 달리는 사람'중에서)


시인은 1년 전, 22일 오전 8시 17분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별세했다. 향년 89세.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민중작가의 대명사였던 대시인의 유언치고는 지극히 소박하다. 어찌 됐건 시인이 떠나고 시집만 남아있다. 유고시집을 읽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죽은 시인의 사회. 요란한 구호도 없이 시간은 그저 속절없이 흘러갈 뿐.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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